결국 '비겁한 변명'이 맞다.
뮤지션을 꿈꿨으나 이루지 못했고, 감독을 꿈꿨으나 이루지 못한 이들이 평론가를 한다는 그런 말을 어디서 들었는데 누가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그렇다고 내가 평론가는 아니다. 풋내기였고 애송이였던 시절, 원고료 한 푼 없이 음악 듣고 영화 보면서 글을 끼적였다. 운이 좋아 온라인에 잡지에 자주 꽤 오래 실렸지만 그때는 그게 즐거운 일이었고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나 싶다.
좋아함을 뛰어넘어 사랑하는 감독. 그래서 더 그에 대해 그의 작품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관련 책은 다 읽었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 책도 분명 몇 년 전에 읽었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다시 읽었다. 뭐 어떤가. 좋은 건 자주 반복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는 거 아니겠는가.
봉준호의 시작부터 작품 단위, 주제 단위, 저자의 의도에 따라 조목조목 펼쳐지는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엄밀히 말하면 봉준호의 영화를 모두 보고 나서 읽어야 고개가 끄덕여지고 수긍되는 부분들이 넘쳐난다. 적을 잘 알아야 이길 수 있듯, 이러한 비평집을 읽기 위해선 대상에 대한 꼼꼼하고 투철한 검토가 사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취향이 제법 잘 맞는 지인과 가끔 술자리를 갖게 되면 최소 서너 시간을 영화 이야기만 나눈다. 봉준호는 언제나 늘 그랬듯 자주 언급되는 감독 중 한 명이고, 그의 작품은 얘기를 하고 또 하고 아무리 해도 결코 끊이지 않는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그런 의미에서 <전원일기>의 터줏대감 김혜자를 주연으로 만든 <마더>는 단연코 봉준호 최고의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기생충>과 <살인의 추억>까지 베스트 3라고 굳건히 믿지만, 가장 봉준호 다운 영화는 <마더>가 아닐까 싶다. 의문스러운 부분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김혜자가 보여주는 그야말로 총천연색의 후광은 그녀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를 내세운 봉준호이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들이라 생각한다. 정교하게 직조된 <기생충>의 완벽함, 그를 표현할 때 자주 일컫는 삑사리의 정점이 된 <살인의 추억>도 마르지 않는 온천수와 같다.
좋아하는 영화를 반복해 보는 습관을 완벽의 경지로 이끌어준 그에게. 그리고 그의 작품을 <기생충>의 완벽함에 가깝게 구성해 준 이 책에 이번 독서 일기를 통해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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