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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편'이라는 무게감 : 오징어게임2

by 잭 슈렉

개인의 취향. 타인의 취향. 예술이라는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즐기고 향유하는 개개인의 취향과 성향일 것이다. 내게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누군가에겐 극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감동받았던 어느 작품이 내겐 시시껄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문학, 영화, 음악, 미술, 건축, 디자인 등 '예술'이란 이름 아래 놓인 그 모든 것들에는 결국 개인의 취향과 다수의 환영의 경계에서 늘 아슬하게 평가받기만을 기다린다.


전편만 한 속편이 없다고 한다. 내게 있어서도 그 말은 맞다. 아무리 에일리언이 날고뛴다 해도 1편의 공포, 어두움, 분위기를 뛰어넘는 작품은 없다고 본다. <대부>역시 2편의 아우라는 충분히 인정하나 1편의 강렬함은 없다고 느낀다. 만듦새가 너무나도 허술했던 <터미네이터>나 <매드맥스>의 경우 <터미네이터 2> 그리고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정도가 '더 나은 속편'이란 느낌을 느끼게 하는 정도였다. 도대체 왜 만들었을지 의구심이 드는 <글래디에이터 2>가 대표적일 것이다. 결국 제작사의 압박이 이토록 아찔한 행태를 만든 것이 아닐까.


뭐든지 처음이 가장 강렬하다. 어쭙잖게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느낀 나름의 고집 중 하나가 모든 디자인의 좋고 나쁨은 그 대상을 보고 난 이후 단 3초 안에 결정된다고 믿는 것이다. 오래 고민하면 이미 그건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보자마자 느낌이 팍! 오는 것. 보자마자 설레고 강렬함이 느껴지는 디자인. 그게 바로 좋은 디자인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 아니 설령 익숙하지만 각본, 감독, 연출, 배우 등의 여러 요소로 분명 새롭게 느껴지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그 한편의 돈벌이가 꽤 쏠쏠했다고 속편을 만들고 시리즈로 장황하게 가래떡 늘리듯 늘려버리면, 관객은 돈벌이의 노예로 순식간에 전락되고 만다. 우연히 크리스마스에 집에 혼자 있게 된 케빈을 구태여 뉴욕 한복판에 두는 만행을 왜 우린 웃으면서 봐야 하는가! 이유는 그것이 바로 영화이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 2>가 오픈했다. 1편의 제작발표 기사만 보고도 폭망을 예언했던 스스로의 감을 탓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그 작품의 두 번째 시즌이다. 하물며 이건 2시간 남짓 장편 영화가 아닌 네댓 시간 이어지는 시리즈다. 말 그대로 드라마. 이미 전작에서 보여줄 것을 다 보여준 마당에 두 번째 이야기라니! 오우삼 감독의 <영웅 본색>에서 그토록 멋진 주윤발을 클라이맥스의 소재로 죽게 만들더니 2편에선 미국에 사는 쌍둥이 동생으로 재출연시키는 만행까진 아니지만, <오징어 게임>의 두 번째 시즌이라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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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스토리> 시리즈를 3편을 최종으로 공식 발표한 이후, 작가들을 아무리 채근해도 새로운 이야기의 꽃망울이 보이질 않아 창피함을 무릅쓰고 4편을 개봉, 조만간 5편도 나온다 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4편을 극장에서 관람했는데 엔딩 크레디에 시나리오 작가가 메인 2명 서브 4명 총 6명이 등장했다. 영화만큼 분업화된 예술 장르가 없을 텐데, <오징어 게임 2>의 대본은 연출을 맡은 감독이 직접 집필했다. 물론 보조 작가들이 있었겠지만 엔딩 크레디트엔 심플하게 그의 이름만이 놓여있다.


전 세계 흥행을 예언하고 시즌 2를 짐작한 기색이 전혀 없는 시즌 1의 완전히 매듭진 이야기에서 또 무슨 이야기가 필요할까. 하지만 감독과 제작사는 충분히 노력한 기색을 비추기라도 하듯 시즌 2를 완성했고, 그 어떤 배경지식 없이 관람을 마치자 이 사람들이 시즌 3을 노골적으로 노려 시즌 2는 완결성 따위 쓰레기통에 버린 마무리로 허탈감을 내게 주었다.


안다. 속편. 어렵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머리가 터질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름 영리하게도 1편의 최종 우승자가 다시 게임에 참여하고 이와 균등한 균형을 위해 게임의 대장을 게임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이야기의 가지를 최대한 넓게 만들고자 대장의 동생, 형사를 필두로 섬을 찾는다는 별개의 미션을 부여했다.


캐릭터 간의 서사는 장황하지만 으레 지극히 한국적이고, 1편과 닮은 듯 다른 면면들이 우승자의 참여로 인해 전복되는 재미는 충분히 있다. 3년 전 참여한 게임의 레퍼토리가 바뀌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예상했으나 달라진 게임에서 약간의 희열을 (어쩌면) 느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어쩔 수 없이 눈에 거슬리는) 배우들의 존재다. 유명 배우의 존재가 다소 적었던 1편과는 달리 2편에는 TV를 조금만 자주 봐도 눈에 익숙할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우리에겐 친숙한 그들의 존재는 이름값 대비 미약하다. 촘촘함보단 늘어짐이 반복됐고, 도대체 왜! 출연했는지 의아할 정도의 등장인물도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우리나라 사람만 보는 작품은 결코 아니다. 그야말로 전 세계 지구촌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판타지다. 양동근은 양동근이 아니고, 빅뱅의 탑 역시 탑이 아니다. 그냥 배우다. 그들이 발음이 나쁘든 마약 범죄를 저지른 전과자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역설적으로 우린 해외 작품을 보면서 그 배우의 일거수일투족을 따져가면서 즐기지는 않지 않은가. 물론, 윤리적인 잣대는 필요하지만 그 잣대로 인해 작품의 가치를 끌어 내려선 안될 것이다. 물론 나도 탑이 나올 때마다 영상을 종료하고 싶었다.


1등의 재등장, 대장의 게임 참여와 함께 두드러지는 감성의 결은 엄마와 아들의 캐릭터다. 다른 나라의 모자 감성을 짐작할 수 없어서 언급할 수는 없으나, 게임 내내 티키타카를 일삼는 엄마와 아들의 감성은 분명 지극히 한국적이고 또 어쩌면 지구적 감수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엄마는 때때로 같은 팀 동료를 격려하고, 아무도 눈치 못 채는 만삭의 임산부를 따뜻하게 감싼다.


오로지 1등만을 위해 죽이고 찌르고 힐난을 일삼던 1편의 속도전과는 달리, 2편에서는 3편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인간'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철저한 상업성을 지닌 예술이기에 더 꾸미고 싶지는 않으나, 맥이 툭 끊긴 7편의 드라마를 모두 관람한 뒤 아깝게 버린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에 생각해 보는 나름의 해피엔딩이다.


2025년에 오픈할 시즌 3에서는 대장의 존재가 밝혀질 것이고, 이 게임이 더 지속될지 아니면 종말을 맞이할지 결정 날 것이다. 설마 시즌 20까지 이어지는 급혐의 길을 걷진 않겠지. 시즌 2는 그런 의미에서 시즌 1과 시즌 3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시즌 3이 있다는 내용을 확인한다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숱하게 본 자가복제는 그만 일삼길 바란다. 배우들의 연기력 따위야 그야말로 취향의 문제다. 모든 장르에 녹아 있을 예술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바로 이야기, 서사다. 그야말로 평범한 어린 시절 놀잇감을 갖고 이토록 획기적인 이야기를 일궈낸 <오징어 게임>의 서사가 2편을 디딤판 삼아 3편에서 얼마나 장대하게 맺어질지 기대하고 싶다.


좁은 골목길에서 땀나도록 놀았던 딱지치기와 제기차기, 그리고 팽이치가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남방 단추 뜯겨지도록 즐겼던 오징어 게임도 기억난다. 여자애들 틈바구니에서 함께 놀았던 공기놀이도 선명하다. 아끼고 아낀 용돈 100원으로 달고나 뽑기도 했었다. 운동회에서 했던 2인 3각도 오랜만에 떠올랐다.


우리 모두의 유년 시절을 가득 채워주었던 그 모든 게임과 시간, 추억들이 이제는 드라마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난 <오징어 게임>에 아낌없는 박수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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