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중음악의 뿌리는 노동요로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어떠한 형태로 존재했겠으나 거슬러 올라가 기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의 끝에는 논에 모를 심고 밭을 매던 우리 조상, 그리고 백인들의 노예가 된 흑인들의 고달픈 삶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흥얼거림은 훗날 음악이 되고 그 음악은 세월을 견뎌가면서 여러 장르로 파생됐다. 재즈, 팝, 록, 사이키델릭, 펑크, 힙합 등등 짧게는 십여 년 길게는 백 년 이상의 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사랑받고 또 만들어 오고 있다.
그 가운데 헤비메탈은 그 어떤 장르보다도 강렬한 사운드를 앞세워 지구 전체를 흔들어 놓았을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단순히 헤비메탈 만을 언급하기엔 부족함이 있을 만큼 그로부터 뻗어 나간 다양한 가지에서 만들어진 파생 장르도 적잖다. 무엇보다 음악이라는 흥을 즐기는 인간의 목적성에 가장 부합될 만큼 빠르고 현란하며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거대한 웅장함은 헤비메탈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마니아의 20년 노트라고 귀엽게 인쇄된 표지의 설명만큼 본문에 등장하는 저자의 호흡은 어렵지 않다. 충분히 짐작될 그리고 알고 있을만한 이야기들이 서사에 따라 기재되어 있고, 굵직한 밴드들의 흔적과 그들로부터 만들어진 다른 밴드의 이야기까지 걸출하게 다룬다.
400쪽 가까운 분량의 단행본으로 다루기에는 애매한 주제로 느껴질 만큼, 저자의 노력은 느껴지나 한 권의 책으로 해소될 만큼의 만족도는 뒤따르지 못한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구분 지어 보다 방대한 분량과 자료를 다뤄 시리즈로 출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핍박을 넘어서 외면에 가까운 대접을 받는 헤비메탈을 주제로 하는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만족감은 넘쳐난다.
청각에만 의존하는 장르를 활자로 설명한다는 것은 언제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더욱이 반세기 이전의 음악에 대해 흥분하며 읽어 내려가는 것도 지쳐버렸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의리를 갖고 들었던 그 시절의 음악, 밴드에 대해 보다 더 체계적이고 자세하게 정리된 시도를 바란다면 너무 큰 꿈일까.
언급되는 밴드의 대표되는 몇 곡 정도라도 QR코드로 안내해 줬더라면... 이는 진심으로 음악을 주제로 하는 모든 책에 꼭 넣었으면 하는 부분이다. 기꺼이 희생된 나무에 미안할 만큼, 소중한 책에 텍스트로만 음악을 전달하는 건 정말 어렵고 힘든 면이 있다.
많이 알고 있다 생각했던 밴드의 모르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좋았다. 기회 삼아 그들의 곡을 찾아 듣는 시간도 즐거웠다. 양손에 반지와 팔찌를 넘쳐날 정도로 치장하고 하루 종일 CDP에 메탈 CD를 번갈아가며 들었던 시절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렸다.
다행스러운 건 아직 내 심장이 그때처럼 두근거렸다는 것. 고맙다. 헤비메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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