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다. 그런 제품이 세상에 있는지 전혀 몰랐다. 하긴 관심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족집게 하나에 무려 2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산다면 그 누구도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펀샵을 통해 알았다. 터무니없이 비싸기만 한 제품만은 아니란 것을. 그리고 그 족집게야말로 족집게 본연의 기능을 무려 58,000% 실현할 수 있는 제품이란 것을 말이다.
지금의 아내와 한창 연애하던 시절, 아내는 가끔 내 턱에 있는 수염 뽑기를 좋아했었다. 가끔 한두 개 정도야 애교스럽게 넘어갔지만, 정말 털 뽑는 게 재밌었는지 제법 즐기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랑으로 뛰어넘을 고통의 수준이 아니었다. 가끔은 주먹으로 턱을 맞은 것처럼 얼얼할 정도로 아팠다. 해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때도 물론, 지금까지도 사무실에서 하루의 시작을 이어가는 루틴 중 하나는 펀샵 둘러보기였다. 자연스럽게 사이트를 둘러보던 중 스위스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만든 족집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배송비까지 포함하면 2만원 중반대의 금액이었다. 상세페이지를 몇 번 탐독했다. 너라면 내 고통을 조금 많이 현저히 줄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민 없이 구매했고 그다음 데이트에 아내에게 선물했다. 세상에나! 애인이 털 뽑는 걸 좋아한다고 족집게를 사 오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아내는 의아한 표정과 더불어 묘한 만족감에 가득 찬 눈빛을 내게 보냈고, 이후 그 족집게는 무려 15년 가까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족집게라는 단순한 구조의 궁극. 그 정확한 접지면과 큰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강력한 조임으로 털을 깔끔하게 뽑아 올려주는 리듬감. 너라면 얼굴에 핀 모든 털을 모조리 다 맡길 수 있었던 신뢰감. 올해가 햇수로 결혼 18년 차인데 2~3년 전부터 기능이 떨어졌고, 지금은 버리기에 너무 정이 들어 화장대 한쪽에 잘 모셔두고 있다.
키 작은 못생긴 오징어지만, 한결같은 성격에 결혼을 결심했다는 아내의 훗날 여담에는 늘 그 족집게가 등장했다. 단 한 번도 상상할 수 없었던 그야말로 엄청난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그랬다. 펀샵은 정말 그랬다. 속된 말로 예쁜 쓰레기가 많았고 조금 격을 갖추자면 럭셔리한 제품들이 즐비했다. 허세에 기댄 아이템도 있었고, 제대로 마음먹어야만 구매할 수 있는 금액대의 제품도 있었다. 물론 놀라운 아이디어와 기발한 위트가 담긴 제품도 있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같은 제품은 분명했으나 다른 쇼핑몰과 분위기도 어필하는 방법도 달랐다. 그야말로 쇼핑몰도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였고, 제품의 선택과 이를 소개하는 상품페이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해 주는 공간이었다.
또한 상품의 특징 그리고 소개와 관련해서 이용자들의 실낱같은 비판과 검증, 사용 후기도 펀샵의 장점이었다. 사용 후기가 이렇게까지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음을 함께 동참하며 즐겼다. 상황에 맞는 댓글을 적절히 써서 두어 번 이벤트에 당첨되기도 했다. 최근엔 도시락 사발면 모양의 도자기를 받았다. 여기에 사발면 먹으면 정말 꿀맛이다.
첫째가 한창 걷기를 시작할 무렵, 아끼고 아낀 용돈으로 캐럴송 8곡이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구매했다. 아내는 당시 뭐 이런 걸 돈 주고 사냐고 면박을 줬지만, 매년 12월 1일부터 26일까지 우리 집에 캐럴을 들려주는 고마운 소품이 되어주고 있다. 두 아이 모두 그 캐럴에 맞춰 신나게 춤추고 있는 것을 보면 아내의 핍박도 달콤하게 들릴 정도다.
그랬던 펀샵이 영업을 종료한다. 건물 하나를 통째로 확장했던 사옥, CJ의 인수, 20년 넘는 그간의 여정이 결국 사업 종료라는 이슈로 마감 짓는 것이다. 그야말로 '어른들의 놀이터'가 사라지는 시점에서의 감정은 적잖게 서운하기만 하다. 순수 이용자로서 복잡한 숫자 계산까지 동참하고 싶진 않지만, 규모가 커지고 감당할 수 없는 덩치가 될 때 이를 더 오랫동안 효율적으로 운영 관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고민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모아둔 용돈으로 나름의 재테크를 살펴보던 중 당시 펀샵에서 타 사이트 대비 가장 저렴하게 판매했던 골드 바가 있어 3돈짜리 하나를 큰마음 먹고 구매했다. 다행히 시세는 오르고 올라 큰마음 먹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서둘러 처분할 계획은 없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훗날 좋은 일에 이 녀석을 사용할 것이다.
즐겨찾기에서도 사라지고 한참 지난 미래에 골드 바를 보고 오래전 펀샵을 추억하게 되겠지.
어린 시절 뛰어놀던 동네 놀이터의 기억처럼, 어른이 되고 뛰어놀던 놀이터 펀샵을 떠올리게 되겠지.
고마웠다.
잘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