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통'이라 쓰고 '마법'이라 읽다

by 잭 슈렉

음력 1월 15일. 정월대보름. 어머니께선 10여 종에 이르는 나물과 잡곡밥 그리고 소고기뭇국을 준비하셨다. 매년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준비하신다. 딱히 전통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은 아니지만, 당신 몸에 밴 세월이 만들어낸 습관처럼 그 고마운 음식을 올해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먹는다.


아버지께선 음력 윤달이 끼어 조부모님의 묘지 정리를 검토하신다. 이제는 그런 것들로부터 더디고 불편함을 느끼셔서 거의 모든 일을 대신 살펴봐드리는데, 묘지 정리는 나도 처음이라 검색하고 통화하고 이틀을 분주하게 보냈다. 봉분, 상석, 비석, 파묘, 개장 등 일상에선 전혀 쓰지 않는 용어들이 휘몰아쳤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버지의 예상보다 저렴한 비용이었고, 조금 걱정되는 것은 아직 아버지 세대의 형제 남매들이 완벽한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두를 것은 없으나 윤달이 낀 해를 재차 강조하신다.


전통이란 무엇일까. 어려운 질문인 만큼 그 답도 쉽진 않다.


herbs-749360_640.jpg


지역에 따라 차례상 음식도 다르고, 하물며 그 차례상도 근거 없이 너무 성대하게 차려지고 있다. 결혼식의 대부분은 서양식이지만 폐백만큼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떠들썩하게는 하지 않지만 약식으로나마 함도 신부 네로 보내고 있다. 턱시도와 드레스, 그리고 양가 아버님들은 양복을 입지만 어머님들은 한복을 입는다. 장례식은 또 어떤가. 굵직한 요소는 우리의 것이지만 검은색의 양복은 서양식이다. 종교에 따라 절을 하기도 하고 목례로 대신하기도 한다. 향을 피우거나 헌화를 한다. 땅에 묻거나 화장 후 자연으로 뿌리거나, 납골당에 모시기도 한다.


가상화폐와 AI가 넘나드는 시대지만 이사는 손 없는 날을 고른다. 결혼 전에 궁합, 해가 바뀌면 토정비결, 사주도 관상도 여전히 존재한다. 인사동에는 우리 전통의 이미지를 드러낸 made in china 제품이 있다. 전통의 영역에서 조금 결을 달리하는 사례지만 여전히 우리는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이성과 감성, 과학과 신앙, 종교의 다양성을 모두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더 어렵다. 전통이란 그래서 더 어려운 게, 맞다.


rice-cake-2322426_640.jpg


교차되고 혼용되며 어느 시점에 딱 부러지게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이 돼버렸다. 결국은 개개인의 삶의 역사 속에서 경험하고 길들여진 관습으로부터 전통은 그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설날에 떡국을 먹기 위해 만두를 빚고 가래떡을 뽑고, 추석에는 송편을 빚는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들이 내가 지금의 부모님 나이가 될 때면 또 어떻게 그 모양을 달리하게 될까. 사뭇 궁금해진다.


반듯하게 접거나 잘라낼 수 없는 일들.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설득을 이끌어내기엔 무리가 따르는 것들. 하지만, 그러한 경험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뜻에 맞춰 시대가 세상이 그 결을 함께 하게 되는 마법과도 같은 현상이 오늘날 마주하는 전통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전통이라 쓰고 마법이라 읽고 싶은 이 밤. 하늘에는 보름달이 탐스럽게 떠 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까. 그 마음을 아껴 가족과 지인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 본다.

소원을 비는 순간에는 소원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마음만큼은 고요해지고 평온해진다.

그 기분에 다시 한번 손을 뻗어 본다. 만지고 싶은 보름달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결혼의 일등공신, 펀샵!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