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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AI 강의 2025 ㅣ 박태웅 ㅣ 한빛비즈

by 잭 슈렉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적을 알아야 승리한다. 적을 모르면 이길 수도 있겠으나, 적을 알면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 마음으로 AI 인공지능에 대한 책을 가끔 읽는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을 이기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물론 인공지능에게 지배당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인공지능 따위가 세상을 지배하는 영화 속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질 것 같은 되지도 않는 우려가 자꾸 나를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을 허락한다. 그럴 일은 없겠지. 암. 그렇고말고.


한 반에 50명이 훌쩍 넘는 인원수가 바글바글 수업받던 초등학교 시절. 다른 수업과는 달리 미술 시간만큼은 2교시 연달아 구성됐었다. 도화지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나면 잘 그린 그림 10여 개를 뽑아서 교실 뒤 벽면에 걸어놓곤 했다. 세상에나! 순수 예술에 순위를 매기다니! 학년 중반이 되면 본인 그림이 더 이상 걸리지 않을 걸 알아버린 친구들은 미술시간에 집중하지 않았다. 여기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초래됐고, 자연스럽게 미술에 대한 흥미는 그렇게 멀어졌다.


인구 감소로 인해 더 이상 교실 뒤에 그림이 걸리지 않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이제 그런 일 조차도, 형평성을 문제 삼아 일어나지 않게 됐다. 미술에 대한 관심은 먼 세상 일이 됐다. 달달 외워서 좋은 대학 가기도 빠듯한 세상에 미술이라니! 순수 예술은 멀어져만 가고, 창의성과 응용력은 시대의 판단 착오 아래 매장당했다. 필요하다면, 인공지능을 열고 원하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몇 마디 타이핑을 하면 된다. 타이핑이 귀찮다면 음성 입력 기능도 있다. 여러 번 그 인공지능을 훈련시켜 원하는 모델과 가장 흡사한 결과물을 얻어내면 된다. 불필요하게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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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생겨나자 라디오가 망할 거라고 했다. 비디오와 OTT가 출현하자 극장이 망할 거라고 했다. 타격은 입었겠으나 다행히 사라지진 않았다. 인공지능이 세상에 만연해진다 한들 달라질 것이 있을까 호언장담하지만 분명 달라질 것들은 생기리라. 무서운 건 더 이상 생각을 골똘히 하지 않게 되는 모습과 쉽게 결과물을 얻는 과정으로부터 벌어지는 나태함일 것이다. 애니메이션 <월 E>에서 우주 세계를 떠돌며 개인 이동 장치가 몸을 맡기고 온종일 모니터만 바라보는 시대가 어쩌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온 것만 같다.


어릴 적부터 PC를 친구 삼아 자라온 나를 앞선 세대가 바라보면 내가 지금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시점과 같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변화의 속도와 범위는 PC가 가정에 침투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물론, 인공지능이 혁혁한 공을 세우며 영향을 끼치는 성과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거대한 기술과 응용이 개개인의 일상에 깊게 스며들게 되는 건 아직 내겐 겁나는 일이다.


그를 처음 본 것은 <다스뵈이다>를 통해서였다. 나이에 비해 귀엽게 생긴 외모, 그리고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 구차스러운 꾸밈도 없고 목적과 방향이 정확해서 귀에 쏙쏙 들어왔다. 이후 그의 책을 몇 권 탐독했고, 이번에는 제법 두꺼운 그리고 가장 최근의 책을 읽었다. '인공지능의 출현부터 일상으로의 침투까지, 우리와 미래를 함께할 새로운 지능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는 그 또한 내가 우려한 것들에 조금은 동감하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었다.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인공지능의 정체, 그리고 여러 국가들이 의견을 일치한 협약, 인공지능이 만든 오류와 위협들이 일목요연하게 서술된다. 책 서문에서도 언급했듯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쉽게 풀어썼다는 것이다. 굳이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저자의 세심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읽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리고 페이지 넘김이 결코 쉽지 않았다. 받아들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내 고질적인 반골 기질 때문일까. 중요한 건 그 반골 기질 따위가 성질을 뻗치는 순간에도 인공지능은 인간 따위가 감히 계산할 수 없는 속도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스카이넷'의 그날이 과연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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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고 옹알이를 시작한다. 뒤집기에 이어 기어다니다가 혼자 서고 걷기까지 이른다. 맘마 파파 웅얼거리다 어느 날 갑자기 말이 트인다. 단어 몇 개를 떠올리다가 말이란 것은 금방 늘어 1분이 멀다 하고 '왜?'를 남발한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경험한 그 시간은 소중한 추억이자 경이로운 기적과도 같았다. 인공지능 또한 마찬가지다. 초반에는 길들이고 훈련시키는데 시간이 필요하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폭발적으로 지능을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자식을 보듬는 부모의 마음으로 살펴야 할진 모르겠으나, 갈피를 잃게 된다면 인공지능의 발전이 얼마나 치솟게 될지 심히 걱정되는 바이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거부했던 인공지능과 조금은 가까워지고자 한다. 그 기회를 준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에게 이토록 친근하고 쉬운 언어로 인공지능을 들려주는 소중한 나침반이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책 자세히 보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298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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