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교해 보는 맛 <스픽 노 이블> 리메이크

by 잭 슈렉

※ 소개하는 영화에 대한 결말이 언급되오니 불편하신 분은 뒤로 가기를 꾹 눌러주세요.






2022년 작품을 2년 뒤 할리우드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리메이크를 했다. 2년 만에 리메이크할 만큼, 이 작품은 분명 매력적이다. 대단할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설정과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근원은 적잖은 충격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원래 작품을 관람하면서 느꼈던 불편하고 꺼림직한 그래서 불쾌한 감정은 그날 밤 꿈에서까지 이어질 정도였다. 이후 하루를 더 보내고 영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시점에 2022년 작품의 감독이 리메이크의 각본을 썼다고 해서 호기심이 들었다. 물론 그는 최초 작품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비교해 보았다. 리메이크에서는 러닝타임이 늘어났다. 그리고 유명한 배우도 둘이나 출연한다. 공포의 느낌이 처연하게 그려진 본래 포스터와는 달리 악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주연 배우의 얼굴이 등장하는 포스터도 궁금증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유럽 특유의 감성이 아닌 할리우드의 손길이 닿은 리메이크라 얼른 봐야겠다는 괜한 용기가 발동했다. 봄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휴일 아침에 플레이 버튼을 재촉했다.


2년 만에 할리우드에서 러브콜을 받은 감독은 얼마나 기뻤을까. 하지만 리메이크라고 해서 본래 작품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건 그도 분명 지루했을 것이다. 더욱이 제작 환경은 할리우드다. 다른 무엇보다 돈맛에 혈안 된 그들이 잔잔하게 악이 승리하는 최악의 결말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만 같다.


boy-5236530_640.jpg


그래서 영화는 흡사 <나 홀로 집에>의 호러물을 연상케 한다. 중반부까지는 고스란히 전작의 흐름을 답습하나 급변하는 분위기에 따라 규모가 큰 집에서 숨 막히는 추격전을 벌인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혀가 잘린 남자아이가 곧 자기 대신 희생하게 될 친구에게 그 모든 범죄의 내막을 공개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전작의 차분하지만 숨 막히는 분위기 대신, 권선징악을 기대하게 만들면서 응징과 복수의 서막을 알린다.


2년의 텀을 두고 만들어진 두 편의 작품.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시콜콜한 것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닮은 듯 다른 듯 그리고 제작 환경에 따른 차이는 필연적이다. 심연의 무언가를 건드린 것만 같은 편집과 이질적인 사운드 그리고 서서히 조여오는 긴장감이 전작이 지닌 걸출한 효과였다면, 리메이크는 노골적으로 악의 기운을 사방에 내뿜고 응징을 위한 기반을 단단히 굳혀나간다.


전작을 보고 불편한 느낌이 짙었던 3일 전의 기분을 떠올려보면 되려 리메이크는 속이라도 후련했지. 복수 따위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평범한 부모가 한순간에 람보나 터미네이터가 되는 판타지까지는 아니지만, 다급해 하면서 그들의 아이와 혀가 잘린 아이까지 챙기는 진심은 다행히도 관객에게 전해진다. 또한 그 마음을 역이용해서 악을 뻗치는 시골 부모의 더욱 노련해진 공격성도 영화로서 즐길만한 수준이었다.


분명한 것은 어린이라는 존재가 지닌 가치, 혀를 잘라 말을 거두고 언어가 달라 드러낼 수 없는 그야말로 표현이 단절된 상황이 주는 단절감이 영화의 공포를 지배하는 설정이라 더욱 안타까웠다는 것이다. 끝까지 발악하면서까지 범죄의 활용 도구인 도시 가족 딸아이의 안위를 걱정하는 건 악이 과연 어떤 얼굴을 지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활용가치가 떨어진 아이를 아무렇지 않게 호수로 던져 인질 삼는 부분도 놀라웠다. 영화라는 장르가 흥행을 위해 설정한 장치라 한들, 현실에선 이보다 더 무서운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것을 보면 절대 간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매운맛을 좋아한다면 전작을 순한 맛을 좋아한다면 리메이크 작품을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물론 평범한 일상에 들이닥친 공포를 굳이 즐기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 관람할 필요도 없다. 표현과 수위의 경중을 떠나 충격적인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타인에게 결코 나쁜 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면, 타인이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보드게임의 맛. 1등이 주는 짜릿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