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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오해와 의심의 트리거

by 잭 슈렉

여덟 살 소녀가 실종된다. 용의자로 사춘기 아들이 지목된다. 또렷한 확정적 알리바이도 있으나, 그 속에는 아주 약간의 허술한 공간도 드러난다. 아들을 지켜줘야 할 부모, 특히 아버지는 이런 상황이 혼란스럽다.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지만, 정작 사실 너머에는 아직 그가 마주하지 않은 진실이 숨어 있다. 그 진실은 생각보다 견고하게 그 누구를 위해 편향되지 않은 중립의 입장으로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따라서 그 시간의 흐름 속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까지, 이 단란한 가족을 위협하는 것은 결코 멈추지 않는 오해와 의심이다.


여기에 더해져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만다. 약간의 관심이 필요한 아버지의 형,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감춰진 사실까지 속속 드러난다. 어떤 사실을 믿고 또 어떤 진실을 따라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매 순간 맞닥뜨리는 선택의 연속은 과연 옳은 결론의 방향으로 향하는 걸까.


연극 <붉은 낙엽>을 감상했다. 가족과 신뢰, 이해와 믿음 등 너무 보편적인 인간관계의 감정들이 연극 속에 빼곡하게 채워졌다. 과감한 생략과 이를 궁금하게 만들게 하는 은유와 복선은 탁월했다. 다소 파격적인 결말로 파국에 이르는 엔딩은 가슴 아팠지만, 숨 막힐 정도로 쉬지 않고 내달리는 2시간 가까운 공연 시간은 가빠지는 내 호흡마저 제어하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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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하게 구성된 무대, 소소하면서도 상징이 있는 소품,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독백과 울부짖듯 포효하는 감정의 분출은 원작을 접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가슴으로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아이를 둔 부모 입장에서 연극의 내용은 더 실감 났다. 불필요한 오해와 의심이 겹겹이 쌓여 나중에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그 크기가 거대해졌을 때를 나는 마주할 수 있었다. 아주 작은 파장이 훗날 어떤 결과를 만들지에 대한 우려도 지켜볼 수 있었다.


의문스러운 해석에 가깝겠지만, 소녀의 실종이란 사건 자체가 일종의 맥거핀처럼 느껴졌다. 소녀의 실종을 통해 주인공의 형, 부모, 아내, 아들까지 관계된 모든 이들의 심연이 서서히 드러나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과연 이 사건이 없었다면 그 심연은 세월 속에 완벽하게 묻혀 비밀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후 다른 사건이나 특정 계기를 통해 반드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그것은 어떡해서든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을 완벽에 가깝게 장악해버린 이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오해와 의심, 연쇄적인 충돌에 이르러 사랑하는 가족을 그것도 무려 둘이나 동시에 잃게 되는 비극까지 이어진다. 연극 시작에서 왜 그가 차분한 호흡과 움직임으로 커튼을 걷고, 결코 짧지 않은 독백을 이어가며 삶의 일부분을 설명했는지 결말을 맞이하고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넘어가 보일 듯 말 듯 그 얇은 커튼을 스스로 걷어내고서야 실체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실체는 생각보다 참혹했고, 믿고 싶었던 것보다 잔인했다.


프레임으로 무대의 시선을 집중시킨 무대 연출 덕에 단 한순간도 다른 생각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몰입하면서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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