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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과정

by 잭 슈렉

TV를 끊은 뒤로 간혹 관심 있는 프로의 정보는 캡처본으로 접한다. 일부러 찾아보지 않더라도 유명세를 치른 소위 '짤'이라 말하는 컷들은 으레 접하게 되는데, 얼마 전에는 <유퀴즈>에 출연한 이병헌의 이야기를 접했다. 지금의 아이들은 사진은 물론, 동영상 등으로 어린 시절부터 본인의 성장 과정을 기록할 수 있어 얼마나 기쁘냐고 말이다. 이병헌 본인은 물론 나 역시도 빛바랜 사진 몇 장이 전부이지 않은가. 어린 시절을 기록한 자료는 그것이 전부였다. 하물며 그럴듯한 유원지 혹은 명소에 놀러 간 사진은 거의 없다. 그때는 아쉬웠을지 몰라도 크고 나니 그런 사진 하나 없는 건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된다. 정말 다행스러운 건 부모님과 형제 가족 모두 건강하다는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 보면 정말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들 투성이다. 아이들의 어린이집 재롱잔치 장면을 서울에서 경기도 화성에 있는 외갓집에 보내드리기 위해선 준비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먼저 캠코더로 아이들을 촬영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소위 말하는 비디오테이프에 복사를 떠야 한다. 그 비디오테이프를 소포로 부쳐야 하고, 외갓집엔 반드시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어야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해서 카카오 맛이 나는 메신저로 전송만 하면 끝이다. 아니, 영상 통화를 걸어 실시간으로 보여드릴 수도 있다.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시대가 도래했다.


얼마 전 첫째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왜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015B의 <이젠 안녕>을 졸업식 노래로 제창했고, 5학년이 불러주는 답가는 없었다. 얼마 안 되는 학생이라 개개인 모두 졸업장과 별도의 상을 하나씩 받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우등상이나 개근상 따위는 없었다. 어쩌면 만인이 평등한 시대가 찾아온 것일까.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 모두가 평등한 느낌이 들어 그것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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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입학을 위해 교복을 맞췄고, 아내는 재단이 필요한 몇 벌의 옷을 오늘 매장으로부터 찾아왔다. 동시에 녀석은 중학교 예비소집을 다녀왔다. 16가지 과목에 따른 책들이 학교 로고가 인쇄된 별도의 가방에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한다. 굳이 비교할 필요 없지만 너무 멋있고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고추에 털이 났고, 목소리는 이미 변성기를 지났다. 키도 나와 엇비슷하고 힘은 나보다 더 센 것 같다. 얼굴에 수시로 올라오는 여드름은 어쩌면 그리 귀여울까. 이렇다 할 고민은 없지만 가끔 아이의 표정을 보면 생각을 하고 있구나.. 고민을 하고 있구나.. 그 순간이 느껴진다.


두 아이를 가족계획으로 세웠고, 고맙게도 건강하게 출산해 준 아내 덕분에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우리 나이로 마흔일곱이 된 2025년,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두 아들을 바라보는 감회는 그전과는 달리 몹시 새롭고 다채롭다. 6년이라는 과정을 마치고 이전과는 조금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첫째를 바라보는 시선, 꼬박 3년을 형과 함께 학교를 다녔지만 이젠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둘째가 감당해야 할 새로운 학년. 대수로울 것은 없으나 그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세계가 펼쳐진다. 외면하고 홀가분하게 이탈할 수도 있겠지만 때때로 그것은 어렵고 힘들 수도 있다. 무게를 짊어진 채 감당해야 하고, 숨 막힐 때도 있겠지만 견뎌내야 한다. 아빠로서 조언도 해주고 관심의 시선을 더 넓고 깊게 펼치겠지만, 미처 닿지 못한 곳에서 싹을 틔울 응어리는 가능하면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지만, 그만큼 내가 나이 드는 일은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다. 서른에 결혼을 해서 광석이 형이 그토록 불러댄 '서른 즈음에 증후군'은 떨쳤다.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에 현혹되어 마흔도 무사히 넘긴 것만 같다(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두 아이가 맞이할 새로운 세계를 함께 관전해야 하는 이때는 달갑지 않다. 하물며 3년이 더 지나 우리 나이로 쉰이 되면 첫째는 고등학생이 둘째는 중학생이 된다. 열심히 돈도 벌어야겠지만, 무엇보다 내 건강을 더 격렬하게 지키고 유지해야 하겠다는 다짐이 날카로워진다.


더 나은 세상. 더 좋은 미래. 무엇보다 즐거운 일상을 약속해 주고 싶다.

부모의 욕심이 아닌, 인생의 동반자로 격려해 주고 싶다.

그래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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