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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

by 잭 슈렉

수술을 앞두고 필요한 검사를 받았다. 오후 반차라는 참으로 온정 깊은 제도는 나를 오후 3시 홍대의 어느 커피집으로 이끌었다. 날카로운 주삿바늘이 잠시 스치고 지난 자리가 조금 욱신거리는 후유증은 벚꽃이 흐드러진 여의도를 가로지르는 기분으로 충분히 치료했다.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라 으레 있을 줄 알고 왔건만, 오늘은 허탕이다.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는 거지.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색안경을 끼지 않으면 도저히 못 버틸 정도다. 해 뜰 때 출근해서 해질 때 퇴근하는 직장인에게 이렇게 하늘 높이 떠오른 햇살을 원 없이 맞아보는 건 으레 사치가 될까. 점심을 일찍 매듭짓고 일터 근처를 산책해도 이 맛은 또 나질 않으니. 그야말로 쏟아지는 햇살만 누려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살면서 종종 누군가의 고민이나 걱정을 들어주곤 했다. 시시콜콜한 연애담부터 결혼 후 자녀를 가질지 말지에 대한 의견까지 뒤섞이면 한마디 대답에도 얼마나 신중을 기하게 된다. 하지만, 내 대답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들이 나를 찾은 이유는 내 반응이 신통해서가 아니라 답 없이 경청해 주는 모습이 좋아서라고 몇은 그리 말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것은 통한 것과 다름없다.


언젠가 명절 연휴 때였다. 추석 날을 앞둔 전날 저녁에 지인으로부터 부리나케 연락이 왔다. 단숨에 그가 있는 기차역으로 향했고, 우린 역전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기울였다. 속상한 일이 있다고 했다. 물론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지지했다. 그대를 믿는 나를 믿으라고. 그렇게 응원했다.



훗날 그는 책을 지었고, 그때의 일화를 책에 담아주기도 했다. 그때 내 응원이 힘이 되었다고 그는 아주 한참 뒤 지면에 인쇄된 활자로 내게 고백했다. 그와 나는 적잖은 나이 차이에 성별도 달랐지만 친구 같았다. 주먹다짐을 하면 큰일이 날 테지만, 그런 시늉을 해도 나쁘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다.


네모 반듯한 커다란 창으로 보이는 홍대 거리는 평온하다. 이곳은 그가 운영하는 카페다. 연락 없이 찾아와 소박한 놀라움을 선사하고자 했으나, 아쉽게도 오늘 그는 여기에 없다. 오래전, 맛있고 달콤한 술을 파는 가게를 운영할 때 연락 없이 찾아온 지인들을 떠올리면 나쁘지 않은 방법인데. 날을 잘못 잡았다.


어떤 말을 해도 그 누구에게 발설하지 않고 말하는 순간 허공으로 사라지는 대나무숲이 있다. 충고나 조언도 필요 없다. 그냥 내 맘대로 지껄이고 그렇게 사라져버리면 여한이 없는 곳. 어쩌면 비밀의 매력은 나만 알고 있음이 아닌, 최소한 단 한 명 누군가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으리라. <화양연화>의 차우가 앙코르와트 돌기둥에 속삭였던 비밀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그 단단한 화석에 깃들지어다.


내 나이가 두 자리 숫자가 되던 해부터 우정을 다짐한 불알친구는 조금 먼 곳에 산다. 그 대나무 숲은 기껏해야 1년에 한 번뿐. 그나마 서로의 묵은 이야기가 사정없이 충돌한다. 그래도 좋다. 맘껏 욕해도 좋은 사이다. 그때 역전 포장마차에서 나는 그의 대나무 숲이었고, 이후 우리는 서로의 대나무 숲이 종종 되어주었다. 물론, 오늘은 그가 나의 대나무 숲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들어줄 숲은 없지만, 그가 잘 가르친 아르바이트생이 만들어준 달콤한 초콜릿 라테는 인상적이다.


속상한 일이 있지도 않고, 해결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밑도 끝도 없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시간만 수다를 늘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머무는 공간에 잠시 쉬었다 가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로가 된다. 좀처럼 마음에 담아두는 성격은 아니기에 오늘의 넋두리는 아스팔트 거리와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흩뿌려야겠다. 자유를 위해 매일 조금씩 운동장에 흙을 버린 <쇼생크 탈출>의 앤디처럼. 개운한 기분으로 다다를 때까지 홀연히 그 앙금들을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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