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서일기] 농담, 응시, 어수선한 연결

농담, 응시, 어수선한 연결 ㅣ 김슬기, 김지수 ㅣ 가망서사

by 잭 슈렉

이해한다고는 하지만 막상 그 실체를 마주하면 선뜻 머릿속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떠올리고 생각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펼쳐내기 힘든 대상은 어쩌면 장애일 것이다. 흔히 영화나 소설 속에서 인간승리의 소재로만 활용되었지, 정작 일상생활에서는 결국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 되어버리는 그 잔혹한 경계. 저상버스가 그렇게 많이 다녀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승하차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건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 물론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시위를 하며 차량 운행에 차질을 주는 건 내키지는 않지만, 그들도 이 사회를 이루는 똑같은 구성원이란 생각을 하면 으레 수긍이 드는 부분도 적지 않다.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을 반만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 열세 살 6학년 담임 선생님께서는 반만 볼 수 있어도 두 배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라 나를 격려해 주셨다. 살면서 불편함은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는 아니었기에 어쩌면 나는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인처럼 행동했고 또 장애인처럼 살아왔다. 때때로 눈앞에 펼쳐지는 미리 예상하지 못한 어떤 순간에는 나도 멈칫거리며 거리를 두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에 후회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다음을 기약하는 비겁함에 타협하고 만다.


웹진의 편집장은 비장애인이고, 연극을 올리는 극단의 대표는 장애인이다. 그 둘이 몇 년간 주거니 받거니 나눈 대화를 책으로 묶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장애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시선이 사실적으로 그리고 몹시 주관적으로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주관적인 활자는 결코 일부의 사고방식에 근거한 삐뚤어진 내용은 결코 아니다. 글로 기록한 비장애인의 마음 씀씀이와 말로 담아낸 장애인이 세상을 살아가며 겪은 모진 풍파들은 건조한 온도로 책이 되었다.


disabled-4027745_640.jpg


메가 시티로서 세계 다른 나라의 그 어떤 면과 비교해도 부족함 없을 서울. 하지만, 여전히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겐 어렵고 힘든 도시다. 하물며 나라의 수도가 이 지경인데 다른 중소도시는 어떠할까. 그들이 사는 도시에 비해 서울에선 장애인을 많이 볼 수가 없어 대한민국의 장애인 비율이 현저히 낮냐는 관광객들의 일화도 오래전 어느 책에서 읽었다. 세련되고 규격화 시키고 최첨단의 유행을 선도한다고는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장애의 여부를 떠나 사람이 살기에는 각박하고 차가운 도시가, 맞다.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연극의 대본을 쓰고 연출까지 도맡아 하는 그녀의 삶은 그래서 더 강직하게 느껴졌다. 당시 서울 지하철역에 휠체어 리프트가 있는 곳은 겨우 네 곳뿐. 그래서 사는 곳을 혜화역으로 하고 학원을 종합운동장 역으로 했다는 글귀는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나마 그런 지난한 시간을 겪어 21세기가 시작한 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 이 정도가 되었음을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미관상 좋지 않다며 시각장애인의 가이드가 되어주는 노란색의 보도블록을 줄인다는 정책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체 인구 대비 왼손잡이 비율이 10%를 훌쩍 넘김에도 불구하고 왼손잡이용 제품을 만들지 않는 것은 철저한 이윤의 계산법에 의거한 것이라 한다. 하지만, 세상을 이루는 다양한 사람들 중에서 늙지 않는 사람 없고 다치지 않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애인 그리고 노인에 대해 까탈스러울 만큼 냉대하다. 마흔이 갓 된 시절만 해도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조금씩 내게 밀물처럼 다가온다. 쉰을 얼마 남기지 않은 요즘에는 더더욱 늙는다는 것에 대한 나름의 준비가 더 철저하고 꼼꼼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여전히 세상을 반만 볼 수 있지만, 두 배 더 깊게 볼 수 있을 거란 최면에서 깨어나고 싶지는 않다.


<책 자세히 보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268800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별이 된다는 거짓말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