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십 년 천권 : 책 나 아이들 세상
블로그도 SNS도 결국 시작조차 안 했다. 나란 사람은 충분히 부지런하고 바지런하고 민첩하고 꼼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작정하고 게을러지고 귀차니즘을 발동시키고 싶을 땐 정말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해야지 해야 돼해야 한다니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절대 안 할 거야 절대 안 할 거야 주문을 외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10여 년 전 도서관 대출 카드를 만들게 했던 지인이 내게 다시 질문을 해온 것이다. 유튜브를 하려면 어떤 걸 준비해야 하냐고 물어왔다. 해본 적 없는 유튜브, 하물며 난 유튜브 자체를 좋아하지도 않고 몹시 싫어해서 거의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하는 방법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지인에게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날 이후 몇 차례 더 지인의 유튜브 준비를 도왔다. 내가 아는 만큼만 설명했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모르는 걸 더 찾고 자시고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났다.
오전 내내 죽을힘을 다해 업무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잠시 사무실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다. 따사로운 봄날의 햇살이 내 뺨을 간지럼 태우듯 느껴졌다. 봄이 오면 으레 자주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렸고 3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산책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바빴던 오전에 비해 오후는 제법 한가했다. 그렇게 농땡이를 부리다가 나도 모르게 유튜브를 해야겠다고 다짐해 버렸다.
얼굴을 보일 필욘 없었다. 화면 편집은 생각만 해도 너무 귀찮았다. 자막을 넣을 바엔 영상 편집기사로 이직을 하고 말지. 휴대폰으로 음성만 녹음해서 검은색 배경화면의 영상으로 변환했다. 그리고 방금 만든 따끈따끈한 유튜브 계정에 등록했다. 주제는 간단했다. 방금 내가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였다.
책 표지 디자인부터 작가에 대한 짧은 소개, 그리고 책의 내용과 더불어 읽고 난 뒤 내 느낌과 소감 등을 정말 아무렇게나 읊어댔다. 대본도 필요 없었다. 그럴 바엔 시나리오 작가를 하고 말지. 자료 조사도 필요 없었다. 그럴 바엔 스크립터를 하고 말지. 책을 다 읽으면 녹음기 앱을 켰고 닥치는 대로 떠들었다. 짧게는 5분 정도 길게는 20분 가까이, 평균 10분에서 13분을 오갔다.
우주만큼은 아니고, 태평양 정도로 드넓은 유튜브의 세계에 오징어 닮은 내 얼굴은 고사하고 까만 화면만 나오는 음성으로만 된 콘텐츠를 과연 누가 들을까. 기대도 안 했다. 구독해 달라고 좋아요 눌러달라고 그 누구에게도 굽신거리지 않았다. 늘 그랬듯 책을 읽었고, 거기에 한 스푼 더해서 녹음까지만 해서 유튜브에 올렸다.
매번 책만 올리기 멋쩍어서 좋아하는 밴드 노래 영화도 사이사이 올렸다. 맨 정신으로 어색한 날엔 술기운도 빌렸다. 이유 불문 내가 즐거워야 한다는 철칙에 그 어떤 어색한 조각 하나 없이 마음대로 올렸다.
2021년 3월에 시작한 유튜브는 그렇게 차곡차곡 회 차를 이어갔다. 거짓말처럼 조회수가 발생했다. 대부분 한 자릿수 조회수였다. 그래도 기뻤다. 누군가 내가 올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는 생각에 설렘도 찾아왔다. 물론 클릭한 그 사람이 끝까지 들었을 거란 기대는 안 했다. 내가 녹음했지만 나만 신났고, 그 어떤 규칙이나 서사 없이 정말 떠오르는 대로 말했으니까. 그러다 신기하게도 또 누군가가 구독버튼을 눌렀다. 아마 실수로 눌렀을지 모른다. 아주 가끔 댓글도 달렸다. 부끄러워서 차마 댓글에 댓글을 달진 못했다.
여름이 되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올린 책 이야기에 그 책의 저자께서 댓글을 달아주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몹시 기묘한 일이었다. 반갑고 기뻤으나 그 감정은 이내 곧 이상한 책임감 아니 무게감으로 날 짓눌렀다. 나만 즐겁고자 올린 내용들이라 정말 할 말 못 할 말 거를 말 다 했는데, 이렇게 저자가 직접 들어버리면 나도 모르게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었다. 이후 몇 번의 업로드에는 머뭇거렸지만, 저자의 댓글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믿고 자기 검열 따위는 금방 철회했다.
가을이 무르익자 어느새 100회 차를 맞이했다. 구독자는 대여섯 명에 조회수는 여전히 한 자릿수였지만 기뻤다. 대단한 무언가가 될 거라는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백번을 업로드했다는 생각에 기분은 좋았다. 술로 자축을 했고 2021년의 끝자락까지 유튜브를 즐겼다. 그렇게 10개월간의 유튜브 놀이를 마감했다. 2022년에도 이어가고 싶었으나 귀차니즘이 발동했다. 무엇보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어가나 싶었다.
없는 의미를 찾진 않겠다. 하지만, 책을 갖고 유튜브를 해본 경험은 내게 분명 재미있고 독특한 시간이었다.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아니 귀차니즘이 다시 사라져 준다면 조금 더 재정비해서 제법 클릭할만한 콘텐츠로 시간을 꾸며보고 싶다. 암흑의 화면보단 선글라스로 얼굴을 반 정도 가려서라도 영상도 보여주고 싶다. 내 특유의 진지함과 MSG를 듬뿍 넣은 이야기를 화면에 뿌려준다면 그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낚일 것만 같다.
책을 10년 정도 읽게 되니 그야말로 별 경험을 다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