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십 년 천권 : 책 나 아이들 세상
주야장천 도서관에서 책만 빌렸다. 달리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빌리는 일 외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기어 다니던 첫째가 걸음마를 시작했고 입을 떼었고 글자를 읽기 시작하자 그렇게 자주 가던 도서관 1층에 어린이 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따뜻한 온돌 바닥에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무엇보다 딱 그 연령대의 아이들이 환장하고 좋아할 만한 책들이 바닥부터 천장 끝까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주말이면 아침밥을 먹고 도서관이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가재수건, 물티슈, 보리차가 담긴 빨대 보온병, 가볍게 먹을 간식까지 가방에 넣으면 괜히 더 든든했다. 물론 첫째 앞으로 대출카드도 만들었다. 내게 읽어달라고 하는 책, 본인이 직접 내게 읽어주겠다고 하는 책, 기껏 뽑아놓고선 두세 장도 채 안 보고 재미없다고 팽개쳐두는 책, 집에 갖고 가서 다시 읽고 싶다고 품에 안는 책까지... 그곳에서 한두 시간은 늘 순식간에 흘렀다.
그러다 언제가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이직을 준비하던 시기가 있었다. 늘 하던 일이라 큰 걱정은 안 했지만, 생각보다 이직에 오랜 시간이 들었다. 매일 집에서 있을 수만은 없어 결국 도서관으로 향했다. 노트북과 노트를 챙겼고, 나보다 젊은 학생들이 숨죽이고 공부하고 있는 공간에 자리 하나를 꿰찼다.
빵빵한 와이파이, 쾌적한 공간과 화장실, 쓸데없는 소음만 내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이직에 필요한 문서 작업도 이어갔고, 대출받은 책도 틈틈이 읽었다. 그곳에 있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공통의 고민을 갖고 있진 않겠지만, 조용히 그들을 보듬어주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큰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
나와 아내, 그리고 첫째에 이어서 둘째도 대출카드를 만들었다. 아직 도서관이 뭐 하는 곳인지 잘 모르는 녀석을 위해 온 가족이 도서관으로 소풍 가듯 나들이를 갔고, 그렇게 대출카드를 만들었다. 본인 증명을 위해 얼굴 사진이 박힌 대출카드가 아닌 몹시 세련된, 그래서 나도 천 원을 다시 내서라도 바꾸고 싶을 만큼 예쁜 디자인의 대출카드였다.
아내는 왜 돈을 버리냐고 핀잔을 주었고,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새로운 대출카드는 막내의 것으로만 허락했다. 그리고 얼마 뒤 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도서관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본인인증을 한 번만 하면, 이후 대출카드 없이 어플 만으로 대출과 반납이 이뤄지는 것이었다. IT 강국다운 멋지고 놀라운 변화였다. 슬그머니 지갑에서 대출카드를 뺐다. 지갑은 그만큼 더 가벼워졌다.
코팅이 벗겨져 너덜거리는 대출카드 역시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두 번 정도, 대출 카드를 챙긴 줄 알았지만 집에 두고 와서 사정사정 끝에 주민번호 확인 후 대출을 했던 적이 있었다. 스마트 폰은 두고 올 일이 없으니 이제 그런 풍경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편리한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대출카드가 스마트 폰 속에 들어간 일은 편리하기도 하고 좋은 일이기도 했다.
네 식구가 도서관에 들러 각자 읽고 싶은 책을 한 아름 빌린다. 예상했듯 책들은 내가 짊어진 가방에 고스란히 담긴다. 사흘을 넘기지 않고 반납될 책도 있을 테고, 꼬박 3주를 채울 책도 있다. 만화책 보듯 넘기는 책도 있고, 꼼꼼하게 읽어 내려갈 책도 있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온 가족 다 같이 도서관 나들이 다녀오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