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놀이

책 십 년 천권 : 책 나 아이들 세상

by 잭 슈렉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 4년 전. 그러니까 그때 막내는 다섯 살이었다. 여덟 살과 다섯 살 두 아들을 마주하고 그야말로 온갖 놀이를 즐겼다. 단순한 보드게임부터 몸으로 하는 놀이는 응당 기본이었다. 세 살 터울 두 아이에게 가해야 할 힘 조절을 적당히 달리하면서 끙끙대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재밌었는지 모른다.


가끔 놀아주는 게 귀찮으면 시체놀이 혹은 병원놀이를 한다. 시체놀이는 결국 아빠가 꾀부리는 거라며 금방 들켰지만, 병원놀이는 두 아이 모두 진지하게 참여했다. 나는 그저 눕기만 하면 됐다. 외과 내과 이비인후과 안가 치과 흉부외과 정형외과까지 온갖 진료과목을 활용했다.


바로 눕거나 엎드려 눕고, 옆으로 누워도 되었다. 아이들은 아픈 아빠를 어떻게든 고쳐주겠다며 별의별 행동을 서슴지 않았고, 얌전히 누운 채로 30분은 족히 놀아줄 수 있으니 정말 최고의 놀이가 아닐 수 없었다.


놀이를 하며 교육적인 측면을 고민해 본 적은 솔직히 없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는 게 맞다 생각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억지스럽고 불편한 상황은 나부터가 싫었다. 한 달에 한두 번 같이 도서관 나들이를 하고, 저녁 먹고 가끔은 읽던 책을 찾아 읽었을 뿐이다.


그러자 언제부턴가 큰 녀석이 책 한 권을 갖고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 사라진 형을 찾다가 동생도 퉁명스러운 표정을 하면서 책 한 권을 갖고 왔다. 글자가 서툴러 동생의 책은 엄마가 읽어주었고, 네 식구는 그렇게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읽던 책을 쭉 읽으면 되었지만, 아빠를 따라 자리에 앉은 두 녀석의 책은 금방 마지막 장을 드러냈다. 이 정도 했으면 아빠가 얼른 책을 덮고 자기들이랑 놀아줘야 한다고 신호를 보냈다. 거짓말처럼 그 신호는 열댓 장 뒤에 있는 포스트잇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한바탕 몸 놀이가 이어진다. 좀비부터 드라큘라, 유령, 귀신, 초식공룡, 육식공룡, 보노보노, 포로리, 너부리, 짱구, 액션가면, 무수히 많은 캐릭터를 내 몸속으로 불러온다.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는 조금 전 책장 넘기는 소리만큼 달콤하다. 아니 더 좋은 소리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온 가족 책 읽기 시간이 몇 번 더 이어지자 ‘도서관 놀이’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굳이 두꺼운 책일 필요도 없다. 집에서 도서관 흉내를 내는 거라 조용할 필요도 없다. 다만, 읽고 싶은 책 한 권 가지고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만 해도 그 시간이 주는 쾌감은 다른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잘 놀기도 하고, 책도 좀 읽고, 숙제도 미리 하면 아이들에게 무얼 더 바랄까.


도서관 놀이가 시작되고 3년이 흐른 지금은 두 아이 모두 살짝 시큰둥해한다. 네 식구가 앉아 동시에 책을 읽는 풍경은 그때만큼 자주 연출되지 않지만, 아이들 각자의 특징이 생겼다. 첫째는 짧은 분량이라도 책을 만든다. 표지도 그리고 주제도 정하고 내용도 채운다.


그렇지 않아도 요긴하게 쓸 것 같은 욕심에 일찌감치 90도 휘어지는 스테이플러를 사두었다. A4 용지 두 세장을 포개 반듯하게 반을 접고 접힌 부분의 위쪽과 아래쪽 적당한 곳을 스테이플러로 고정시키면, 제법 그럴듯한 중철 제본의 책이 만들어진다. 그곳에 그때그때 생각한 것들로 책을 만드는 것이다.


막내는 성대모사에 집중한다. 동화책에 나오는 주인공, 할머니, 할아버지, 나쁜 사람 등 성격에 맞는 목소리 흉내에 진지해진다. 1학년이 된 설렘 때문일까. 아빠에게 책을 읽어준다며 제목부터 본문을 지나 글쓴이 소개까지 마무리되면 성공했다는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집 근처 도서관에 놀러 가기도 하고, 집에서 놀면서 도서관인척 흉내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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