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즈 ㅣ 바츨라프 스밀 ㅣ 이한음 ㅣ 김영사
윌 스미스와 토미 리 존스가 출연한 외계인과 한바탕 싸우는 영화 <맨 인 블랙>이 떠오른다. 신참내기 요원에게 무기라고 건네주는 손바닥만 한 총에서 엄청난 화력이 뿜어져 나왔고, 거대한 우주가 고양이 목걸이에 매달린 구슬 속에 들어 있는 설정들 말이다. 비주얼로는 여지없이 불편하고 거북하나 크기가 작은 외계 생명체는 상대적으로 귀엽게 표현되고, 크기가 큰 외계 생명체는 덩치에 비해 온순하기 그지없었다.
흔히 크면 무섭고 난폭해 보인다. 가끔 집에서 만나게 되는 바퀴벌레만 하더라도 작은 건 금방 잡게 되지만, 그보다 좀 더 큰 녀석을 만나면 단번에 잡는 것이 머뭇거려지기도 한다. 아무리 커도 개미는 귀엽고, 아무리 작아도 코끼리는 무섭다. 키가 크면 으레 있어 보이는 분위기... 키 작은 사람은 주목받지 못하는 그런 분위기도 종종 사회에서 마주하게 된다.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워 주입식 교육을 펼치던 곳이 학교라면, 어른이 되고 사회에 나오면 크기라는 범주에 있어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중역들의 의자와 책상은 평사원보다 크다. 그들의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글래머 몸매를 자랑하는 배우들의 굴곡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들쑥날쑥의 거리 차이가 분명 있다. 비싼 차가 크기도 크고, 비싼 숙소가 저렴한 숙소에 비해 면적이 크다(넓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도 마찬가지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크기란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자 척도가, 맞다.
책 제목은 단순한다. 사이즈. 크기. 부제는 더 명랑하다. "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와 더불어 "세상 모든 것의 성장과 한께, 변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다. 표지를 보고 은근 발칙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본문에 내가 기대한 크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하찮은(?) 크기와는 달리 굵직한 사안에 대한 크기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 그리고 그 영역으로부터 파생되어온 인류의 역사 사회의 흐름에 대해 저자는 이야기한다.
죽자고 고집했던 황금비율이 갖고 있는 맹점, 비례 그리고 대칭 등 역사적으로 으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뒤틀림이 재밌다. 또한 항공기 좌석을 기준으로 인간의 비례와 인체공학을 다룬 부분도 색다르다. 키가 아주 크거나 몹시 작은 사람이 불편을 겪을 순 있어도, 어느 정도 평균에 가까운 키로는 살아가기 참 좋은 세상이다. 저자는 이 부분을 단순히 사이즈만 들여다보는 1차원적 관점이 아닌, 사회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기인한 다층적인 고민을 이뤄간다.
또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상'이란 기준에 대한 언급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야말로 통계에 지나지 않는 정상이란 범위 안에 포함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헛수고와 노력들이 소비되는가는 다시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날이 바뀌는 기준과 형태를 달리하는 보편성을 언제까지 고집해야 할까. 확장되어 '질서'가 갖고 있는 맹점도 책에서는 흥미롭게 펼쳐진다.
너무 잘나면 두드러지고 못나면 뒤처지니 중간만 하라는 말이 생각난다. 하지만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간이란 위치도 사뭇 위험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험난한 세상에서 꼭 매번 지칠 때까지 싸우고 부딪치면서 살아야 할까. 차분하게 물결치는 파도를 구경하며 백사장에서 편안하게 쉬어도 좋으련만... 하나 그 백사장을 이루고 있는 모래의 크기, 파도의 입자, 선베드의 크기와 내가 마시고 있는 맥주가 담긴 컵의 크기, 그리고 나를 서비스해 주는 직원들의 급여 봉투의 크기(두께), 그곳까지 가기 위해 탑승했던 비행기 좌석의 크기, 그곳에서 내가 입고 있는 수영복의 크기, 백사장을 거니는 비키니 수영복의 크기, 또 뭐가 있을까...
크기로부터 온전히 해방되긴, 진작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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