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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일. 너무 매력적인 것

by 잭 슈렉

복학생이 족구에 미쳐 벌이는 꿈같은 이야기 <족구왕>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매력은 내세울 것 하나 없지만 족구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떳떳할 수 있음을 여지없이 보여줌에 있다. 제목으로 봐선 같은 감독의 차기 연출작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감독이 연출한 <걷기왕>이란 영화도 있다. 버스나 자동차 등 이동 수단을 탈 수 없는 질병에 걸린 주인공이 등하교를 걷기로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경보 대회에 참가하게 되는 이야기다. 두 편 모두 주연 배우의 노련한 연기와 예상을 깨부수는 잔잔한 에피소드로 제법 달콤한 영화였다. 스케일만 클 뿐, 껍데기로만 치장한 영화들 사이에서 제법 담백하고 수수한 멋이 느껴지는 영화라 가끔 케이블 채널에서 만날 때면 <쇼생크 탈출>처럼 채널 고정이 돼버리곤 한다.


면허를 선택했다 한들 음주 운전은 안 했겠지만, 일찍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술을 떠올리며 운전을 포기했다. 고로 나는 운전면허도 없고 차도 없다. 대중교통을 사랑해서 언젠가는 대중교통 이용 수기 공모전에서 입상도 했다. 물론 상금으로는 맛있는 치킨과 맥주를 사 먹었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대부분 마이카를 지닌 세상에서 차가 없음이 유일하게 미안해지는 건 두 아이를 떠올릴 때다. 아내는 진작 내가 운전에 취미 없는걸 알고 날 선택했으니 조금 덜 미안하다. 비록 차가 없다 한들, 못 가고 안 간 곳 없으니 아이들도 크게 아쉬움은 없을 것이다(라고 믿어본다).


첫째는 중학교에 입학, 반티셔츠를 영국 프리미어 리그 유니폼 뺨 때릴 수준으로 제작했다. 몇 번 학교에서 축구를 즐겼는데 그만 오른쪽 새끼발가락뼈가 골절됐다. 수술도 했고 깁스를 했고 집에서 회장님 수준으로 편안하게 쉬고 있다. 아주 가끔 소화해야 할 일정이 있어 1개월 렌털비 4만 원을 결제하고 집에 들인 휠체어로 근거리를 모셔다드린다. 사람 앞일 아무도 모른다지만, 아이가 학교 체육시간에 축구하다가 다쳐서 휠체어를 밀게 될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살고 있는 곳이 서울 도심 한복판이지만, 다행히도 언덕이 거의 없는 평지라 별일을까 싶었다. 기껏해야 편도 1km 남짓, 차도 옆으로 뻗은 인도는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전동 휠체어가 아닌 일반 휠체어가 그것도 뒤에서 보호자가 밀어주면서 가기에도 길은 절대 온순하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노란색의 보도블록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길게 뻗어는 있어도 폭으로는 한 칸짜리라 휠체어 양 바퀴 사이로 품으면 절대 마주칠 일이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아주 조금 확대해서 모든 인도가 장애물이란 것이다. 오토바이가 수시로 오가면서 퍼즐처럼 늘어진 보도블록은 제각기 바닥으로부터 삐뚤빼뚤 튀어나와 있었다. 횡단보도로 이어지는 아주 약간의 내리막길 역시 균열이 적잖았고, 개구리 주차를 감행하는 자동차들로 인해 파손된 곳이 적잖았다. 이면 도로 진입로 역시 마찬가지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본가가 있어 휠체어를 밀며 마실을 갔다. 아파트라 휠체어 진입로가 있어 별일 없겠지 싶어 향했는데, 세상에나! 1cm도 안되는 진입로 직전의 턱은 절대 휠체어를 허락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턱없이 매끈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입로를 만들고 25년이 흘렀으니 그 턱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구조물. 뒤에서 내가 미는데도 휠체어는 절대 전진할 수 없었다. 휠체어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으나 유지 보수관리의 필요성이 사라진 시대에 잠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두발로 걷고 있는 입장으로 불편하게 이동하는 모든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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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찔했던 것은 다소 폭이 좁은 인도, 그 옆에 놓인 가로수와 가로수 보호대로 인해 그야말로 휠체어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 폭이었다. 결국 초반에는 차도 옆 인도를 이용했다가 최근부터는 이면 도로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보도블록 대신 아스팔트가 되려 휠체어에겐 덜 위험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보호자로서 아이가 탄 휠체어를 밀며 동네를 몇 번 오고 가면서 그 어디에서도 휠체어를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억을 돌이켜봐도 그런 풍경을 본 적이 (거의도 아닌 전혀)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휠체어를 미는 모습을 사람들이 제법 흥미롭게 지켜봤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까진 아니었지만, 고맙게도 사람들은 눈빛으로 응원을 보내주었고, 거리에선 양보를 먼저 해주었으며, 이면 도로의 자동차들도 안전운전 배려 운전을 이어주었다는 것이다. 아직, 살만한 세상이 맞다.


시도해 보고 싶은 생각은 1도 없지만, 저상버스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혼자 승하차를 하는 것은 어떤 그림이 펼쳐질까 궁금해졌다. 그런 장면을 마주했을 때 그 버스에 탑승하고 있는 승객과 기사, 그리고 정류장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그야말로 아무렇지 않게 평온하게 일상에서 으레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그 상황에 개입해서 도와주고 배려해 주고 안전함을 만들어주는 풍경은 과연 다가올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나 역시 휠체어에 몸을 실을 수도 있고, 버스에 탑승해있거나 정류장에 있을 수 있다. 그야말로 나와는 상관없는 남일이란 생각은 절대 들지 않아야 할 것이다.


깁스를 풀고 다치기 전처럼 일상으로 복귀하려면 아직도 꼬박 한 달이 더 남았다. 그때까지 대략 예닐곱 번의 휠체어 나들이를 해야 한다.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가 되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걷는다는 일. 마음껏 뛰는 일. 두 다리로 대지를 박차고 성큼성큼 무릎을 굽혀가며 이족보행하는 그야말로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 틀림없다. 그 매력을 더 자주 만끽해야겠다. 그리고 그 매력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도 그 매력만큼이나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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