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ㅣ 데이비드 이글먼 ㅣ 김승욱 ㅣ 알에이
얼마 전에 집에서 순두부찌개를 만들던 중 마음이 급해졌다. 당면을 미리 물에 불렸어야 했는데 메뉴를 정하고 요리를 마무리해야 하기까지 시간이 촉박했던 것이다. 마치 15분간 요리를 뚝딱 만들어야 하는 케이블 채널의 요리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주방만큼 위험한 곳은 없다고 늘 생각했던지라, 아무리 급해도 최대한 천천히 마음을 두고 조리과정을 하나씩 수행하고 있었다. 결국 찬물에 불려둔 당면에 응급 수술을 하기로 했다. 전기 주전자에 물을 가득 채워 끓여 두 번을 쏟아붓기로 했는데 그만 두 번째 붓는 과정에서 스테인리스 볼을 잡고 있던 왼손에 팔팔 끓어서 전원을 방금 끈 전기 주전자의 뜨거운 물을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쏟아붓고 말았다.
분명 의식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은 어쩌면 무의식이 나를 지배한 걸까. 아니면 의식하고 있었으나 오른손과 왼손 사이에 그 어떤 시간 차이가 발생했던 것일까. 아니면 나이가 제법 들어서 아주 짧은 순간 치매와 같은 일이 내게 벌어진 걸까.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사고라 고통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어이가 없어서 아이스팩을 꺼내 손등에 지지기만 하면서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때마침 읽고 있는 책이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다. 세상에나. 이 책의 독서 일기를 쓰기 위해 스스로에게 벌인 일이라면 너무 어처구니없는데, 이유 불문 지금 내 손엔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책이 쥐어 있다. 충분히 어려운 주제라 머뭇거렸지만, 쉽게 읽히는 맛이 은근 매력적인 책이 틀림없다.
더욱이 저자는 각 주제에 맞는 사례를 굉장히 적절하게 선별한 것으로 느껴진다. 보통 이런 종류의 책에서 사례라 함은 주제를 뒤받쳐주기 위해 다소 작위적인 설정이 난무하는 느낌도 받게 마련인데, 무의식과 관련된 여러 사례들은 해당 주제의 이해와 인식을 더욱 높게 이끄는데 충분했다.
특히 깨어 있으나 뇌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진 범죄에 대한 갑론을박은 색다른 면이 느껴졌다. 다양한 범죄를 에방 하기 위한 프로파일러, 법의학 등의 여러 분야에서도 반드시 그리고 심층적으로 다뤄야 할 주제가 아닌가 싶었다. 정신병으로 치부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뇌가 자각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경계에서 벌어진 범죄는 분명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것들로부터 반응하는 작용, 그리고 그것들을 교묘하게 뒤틀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 뇌가 갖고 있는 인지 능력과 뇌가 활용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각종 실험과 예시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것은 어쩌면 꿈을 지배하고 조작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고자 하는 영화 <인셉션>의 의도와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이를 더 세밀하게 발전시키고 또 긴밀하게 적용시킨다면 사람들의 투표 또는 정책의 선택, 여론의 흐름까지도 장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부분이었다.
깨어있는 지성이 올바른 신념 아래 원활하게 발휘될 수 있는 민주주의가 탄탄하게 그 기반을 마련한 세상을 (갑작스럽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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