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영화로 만나는 우리들의 슈퍼스타 ㅣ 이석재

영화로 만나는 우리들의 슈퍼스타 ㅣ 이석재 ㅣ 북오션

by 잭 슈렉

어릴 적 운동신경이 썩 좋지 않았다. 뜀박질은 제법 잘했는데 구기종목은 영 꽝이었다. 평범하지 못한 시각 구조를 갖고 있다 보니 특히 작은 공놀이는 더 엉망이었다. 농구와 축구는 곧잘 했으나 야구나 짬뽕은 영락없이 맥을 못 췄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포츠와는 담쌓게 되었다. 사람들이 왜 프로야구를 보는지 몰랐다. 친구 따라 LG 트윈스 어린이 회원에 가입을 하려고 했으나 가입비가 무려 5천 원이란 사실에 화들짝 놀라 일찌감치 꿈을 접었다.


올림픽을 하는 이유는 알겠으나 열광하는 정도는 아녔다. 누군가 금메달을 따겠지. 퀸 연아만큼은 목놓아 응원했다. 그나마 공평한 조건에서 겨루는 승부란 이유로 스포츠가 갖고 있는 매력은 좋아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국력과 돈에 따라 규칙이 바뀌고 편파 판정이 이뤄지는 바닥이라 어디만큼 진실과 균형이 존재하는 장르라고 봐야 할지 가끔은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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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 출신의 영화광 이석재 PD가 쓴 책은 영화 속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로야구도 별로 안 좋아하는 내게 메이저리그 이야기가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썩 달갑지 않았다. 어떻게 연출을 했고 누가 출연했으며 특정 신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 영화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적 찬란함을 다루면 좋았겠지만 그런 건 없다. 영화 한편 기준 배경이 되는 스포츠 이야기가 90% 그리고 영화 이야기가 10%다. 맥이 빠졌다. 하지만, 차분하게 저자가 들려주는 그때 그 시절의 그 순간 이야기에 조금만 집중을 했더니 흡입력은 순식간에 어마 무시해졌다.


비록 알고 있던 선수는 아니더라도 그때 그 상황이 얼마나 드라마틱 하고 아찔했는지 간접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책에서 다룬, 그러니까 영화로 만들 정도로 이야기가 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종교도 신도 믿지 않지만, 뛰어난 스포츠적 재능을 허락한 대신 짧은 생을 준 것은 아닐까. 그저 안타깝고 허무하기까지 했다.


야구장에 염소를 데리고 와서 쫓겨나면서 저주를 퍼부은 시카고 컵스의 이야기는 웃어넘기기엔 소름이 돋는 이야기다.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의 이야기는 이후 <그린북>, <히든 피겨스> 등으로의 확장을 가능케 한다. 루게릭 병이라 일컫는 양키스 선수 루 게릭 이야기, 패전투수 삼미 슈퍼스타즈의 감사용까지... 야구에 담긴 희로애락은 그야말로 우리 인생사와 고스란히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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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우리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영화다. 이범수라는 캐릭터도 훌륭했고, 군더더기 없이 차분하게 그 시절을 재현하는 영화적 맛이 쏠쏠했다. '제 이름은 감사용이에요~'라는 말을 '감사해요~'라고 듣는 장면은 실소가 뿜어져 나왔다. 지면 어떤가. 승부를 겨뤘으면 그걸로 된 거지. 구태여 금메달만 환호하고 1등만을 최고라 치켜세우는 분위기도 이젠 바뀌어야 한다. 물론, 올림픽에 참가에 의의를 둔 선수만 출전하지 않는다. 겨뤘다면 1등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2등도 8등도 그리고 예선 참가 선수들에게도 우린 지대한 관심과 많은 박수를 선사해야 함이 맞을 것이다.


권투, 축구, 핸드볼, 탁구, 테니스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도 등장한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맨발로 마라톤을 완주 금메달을 목에 건 아베베 이야기다. 당시 대회는 도쿄 올림픽이었고, 그는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순간 조국인 에티오피아 국가가 아닌 일본의 기미가요를 듣게 됐다. 여전히 치졸하고 졸속한 종족이다. 20km 구간부터 확연히 1등을 예상하는 질주를 했건만, 1시간 사이 선수의 조국 국가를 준비하는 것이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책을 읽으며 모처럼 분노와 엄청난 화가 치밀어 오른 순간이었다.


이 밖에도 종료 3초를 남겨두고 소련과 미국이 대립하며 서너 번 판정을 번복, 3초를 30초 이상 사용한 농구 경기도 있었고, 서른 살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한 김득구의 생 이후 죄책감으로 인해 안타까운 선택을 이어간 심판의 이야기도 가슴이 아팠다. 책 속에는 "인간승리"라는 말이 어울리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국가대표>, <쿨러닝> 등 다루지 못한 작품도 있으나 저자의 직업적 특성에 맞게 세밀하고 짜임새 있게 다룬 당시의 상황 묘사는 이 책이 주는 가장 훌륭한 장점일 것이다.


동일한 조건이다. 시간도 환경도 체격도 그리고 승과 패를 가르는 조건도 모든 것이 동일하다. 힘껏 겨루고 이긴 자와 패배한 자 사이에 존재하는 공기는 단순히 연봉과 스포트라이트의 조명으로만 해석하면 안 될 것만 같다. 삶이란 긴 여정을 마라톤으로 구태여 비유하고 싶진 않지만, 트랙을 달리는 선수도, 응원하는 관객도, 촬영하고 편집하는 엔지니어, 심판, 경기장에서 일하는 많은 관계자들 등 그 마라톤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에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 모두가 마라톤을 완주하고 1등을 할 필요는 없다.


마라톤은 잠시 잊자. 실컷 낮잠이나 자야지.


<책 자세히 보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468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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