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통틀어 돈 주고 산 책 중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이 가장 후회스럽다. 고등학교 때로 기억하는데 대형 서점에서 진열대를 매력적으로 만들었나 싶다. 읽은 건 기억나는데 남는 건 없고, 언제부턴가 이런 유의 제목을 표지에 인쇄한 책들이 그야말로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잘 사는 법, 잘 먹는 법, 잘 빼는 법, 돈 잘 버는 법, 도무지 무슨 방법이 그리 많은지!!! 이유를 불문하고 가이드가 되어 주는 것은 좋지만, 복사하고 붙여넣기 수준의 책들은 이제 그만 만들면 좋겠다. 나무에 미안할 따름이다.
앞서 언급한 책과 비슷한 종류의 책을 전혀 읽지 않지만, 이번 책은 달랐다. 저자가 이어령이었다.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용기를 내어 대출을 했다. 묵직한 하드커버와 중앙에 창문처럼 만들어진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나를 향해 쓴 글이 당신을 움직이기를"
저자 다운 표현이다. 책에는 모두 9개의 소주제를 따라 저자가 평소 생각하고 써 내려간 글들이 실려있다. 마음, 인간, 문명, 사물, 언어, 예술, 종교, 우리, 창조까지... 인생 선배의 따뜻한 조언과 더불어 예리하게 써 내려간 대상을 관통하는 매서운 눈초리도 느껴진다. 단어에 따른 글줄이 길어야 반 페이지 수준이라 책장을 넘기는 속도도 더디지 않았다. 되려, 압축되고 정제된 글줄이 너무 쉽게 넘어가는 것만 같아 도중에 일부 단어들은 읽고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부모 말도 잘 안 듣는 시대다. 학교는 다니라고 하니까 다니는 곳이고 선생님의 입지는 예전만 못하다. 성공과 경쟁 속에서 친구와 지인들의 관계 역시 계산적으로 바뀐 요즘이다. 그가 언급한 이야기들이 모두 맞다고 할 순 없지만, 사람마다 개성과 취향이 다르듯, 그가 이야기하는 것들 역시 읽는 사람에 따라 더 깊게 스며들기도 하고, 겉돌기도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는 압축되고 정제된 내용이기 때문에, 호불호를 떠나 마주하면 좋을 책이다. 이국적인 풍경을 담은 엽서를 보면 막연하게 그곳에 가고 싶다는 바람이 들 듯, 그의 책은 인생을 돌이켜보게 하고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지의 그것들에 대한 소박한 기대와 추측을 선물한다. 최근 들어 어깨가 뻐근해서 수시로 팔을 돌려주는데, 그럴 때마다 간절해지는 나름의 단어는 바로 '젊음'이다. <이어령의 말>을 읽고 내 안의 단어를 떠올리며 그를 잠시 거울삼아 비춰본다.
젊은 날엔 젊음을 알 수 없다. 젊음을 깨닫는 순간 그는 젊음으로부터 이미 한 발자국 이상 멀어진 사람이다. 하지만, 떠나간 젊음이 다시 오지는 못할망정 영영 잃는 것만은 아니다. 비록 관절이 뻑뻑하고 숨이 가불지언정 마음이 젊다면 우리는 영원히 젊을 수 있다. 위안이 아니다. 위로가 아니다. 물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어감도 멋진 일이다. 순리에 맞춰 조금씩 저물어가는 긴 그림자의 여운도 아름다운 일이다. 젊거나 늙거나 그런 게 중요할까. 살아 숨 쉬고 있음에 매일매일 감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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