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아날로그의 세계 ㅣ 데얀 수직 ㅣ 김동규

아날로그의 세계 ㅣ 데얀 수직 ㅣ 김동규 ㅣ 북스톤

by 잭 슈렉

결국은 스마트폰이 그 모든 것들을 다 집어삼킨 꼴이 되었다. 무조건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각각의 기능을 가진 다수의 제품들을 스마트폰 하나가 통일 시킨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현상으로 보는 것이 맞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에 내 가방엔 다음과 같은 물건들이 담겨 있었다.


캐논 300D 바디, 50.8 단렌즈, 파나소닉 CDP, CD 케이스와 그 안에 주 단위로 교체했던 CD 10여 장, 크로키 북, 색연필, 이어폰, 휴대폰, 지갑, 교통카드 정도로 기억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을 스마트폰 하나로 퉁 칠 수 있게 돼버렸다. 사진도 폰으로 찍고 음악도 폰으로 듣고 버스도 폰으로 타고 결제도 폰으로 하고 그림도 폰으로 그린다. 간편해서 좋긴 하다. 하지만, 그 특유의 손맛은 어디에서도 느껴볼 수가 없다.


철커덩 거리는 셔터의 느낌. 그와 동시에 미러가 움직이는 그 떨림, CD가 돌아갈 때의 설렘. 비록 튕기는 게 쥐약이었지만 CD를 갈아 끼우면서 앨범 전체를 들을 때의 쾌감, 사진으로 찍어도 되지만 구태여 그림을 그릴 때의 여유로움... 하지만 지금은 손바닥만 한 사각형 단말기에서 모든 것들이 해결된다. 여기에 전자사전, PMP, 노트북, 타자기 등의 기능도 추가다. 그야말로 끝판 왕이다. 물론 내 가방에 담긴 것들이 오리지널 아날로그는 아니다. 하지만 독립된 기능을 갖고 있는 주체로 보면 스마트폰의 기능이 가히 혁명적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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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아날로그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있다. 하지만 그때에 비해선 아날로그가 설자리는 몹시 협소해졌다. 각각의 기능에 초점을 둔 다소 둔탁한 디자인이라 할지라도, 아날로그는 오늘날 디지털이 있을 수 있도록 뿌리가 되어주었다. 다행이라면 레트로니 복고니 하는 유행의 흐름에 따라 다시 각광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날로그 디자인에 디지털의 숨결이 깃든 제품을 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갓 쓰고 양반 타령하던 시절, 이미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는 해저터널이 뚫렸고, 미국은 항공모함을 만들었으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에펠탑이 하늘에 꼿꼿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업혁명 이후 고도로 발달된 기술력은 1900년 초반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보는 이제는 평범한 소통의 문화가 당시에는 거대한 흐름이 되었고, 이를 구현코자 했던 기기들의 개발은 소비자들의 욕구에 따라 다양해졌다.


스마트폰이 일련의 디자인을 완성시킨 후 자잘한 기능 외에 외형에서 큰 변화를 주지 못하는 것은 영상을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는 최대 장점과 동시에 약점으로 인해서 크다. 하지만, 책에 담긴 아날로그 시절의 제품들은 이해가 선뜻 되지 않을 디자인부터 아무리 보고 다시 봐도 세련된 스타일에서 결코 지금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수십 년을 내다본 외관까지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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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에 정확한 초점을 둔 디자인부터 과장되고 우주선 등을 닮은 기형적인 형태까지 다양하다. 책은 고해상도의 이미지와 이를 함축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하는 내용을 통해 한 면에 제품 하나를 정성껏 다룬다. 또한 일본을 대표로 하는 동양의 스타일과 미국과 유럽의 스타일을 비교할 수 있는 즐거움도 선사한다. 앞서도 너무 한참 앞서나간 스타일의 흐름은 하드커버와 선명한 재질의 종이로 거듭난다. 1장 사운드에서는 레코드, 라디오, 카세트 플레이어 등을 다루고, 2장 비전에서는 사진, 카메라, 텔레비전, 비디오를 다룬다. 3장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전화기, 타자기, 복사기, 팩스 등을 4장 인포메이션에서는 측정기, 시계, 타이머, 계산기 등을 소개한다.


일례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 톰 행크스의 취미가 타자기 수집이라 한다. 무려 250여 대를 모았다고 하고, 그는 타자기를 사용하면서 정제된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큰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물론 타자기로 타이프한 글자도 특수 용액으로 지울 수 있지만, PC에서 삭제하는 것보단 번거로운 일이다. 결국, 타자기는 타이프하는 순간 활자가 확정되는 지극히 아날로그의 냄새가 진한 기기가 아닐 수 없다.


계획대로 움직이고, 고장 나면 수리한다. 수시로 달라지는 정보 값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닌 예정된 지점으로부터 시작되는 정밀하고 첨예한 움직임들의 연속. 그것이 아날로그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돌아가고 싶긴 하다. 아날로그의 시대로. 타임머신이 없으니, 그때 그 정서를 더 찾아 품에 간직할지어다.


아날로그 냄새, 좋다.


<책 자세히 보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317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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