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초의 N 차 관람 작품은 <살인의 추억>이었다. 당시 어쭙잖게 발가락 하나 정도 걸치던 시절이라 기자시사회에서 보고 그 두근거림과 울렁거림을 주체할 수 없어 두 번 더 극장에서 관람했다. 이후 <플란다스의 개>는 비디오로 봤다. 같은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하기엔 뭔가 어딘가 조금 느낌이 생소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후 <괴물>을 두 번 극장에서 봤다. 김혜자 나온다고 꼬셔서 신혼 초에 아내와 같이 <마더>를 봤으나 아내는 질겁했고 나는 환장을 했다. <옥자>, <설국열차>, <기생충>까지... 일곱 편의 연출작이 내게 그리고 전 세계 영화계에 던지는 화두는 아무리 되짚어 봐도 뜨겁고 밀도가 높다. 이미 완결이 난 영화일 뿐인데도 그의 작품은 되짚어 볼수록 새로운 것이 드러난다. 그래서 즐겁다.
커다란 판형에 큼직한 이미지들이 두툼하게 들어 있어 너무너무 좋았다. 저녁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샤워를 끝낸 뒤 바로 책을 읽어 나갔다. 그러길 꼬박 5일... 읽는 속도가 아까워서 천천히 읽었다. 내가 찍은 사진도 아닌데 삽입된 사진 한 장 한 장 너무 좋고 달달해서 몇 번을 들여다봤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봉준호의 작품 세계"라는 부제가 매력적인 <봉준호>는 그의 연출 작품 7편에 대한 제법 심도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한 작품 사이사이 해당 작품의 참고가 된 작품 또는 작가의 이야기도 제법 흥미롭다. 후반부에 이르러 봉준호와 오랫동안 작업을 해온 스태프들의 인터뷰도 진국이다.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감독도 훌륭하고 그를 다루는 책도 훌륭하다. 이제 그의 오랜 팬인 나만 훌륭하면 될 차례다.
그의 작품과 관련하여 무슨 이야기를 더 할까. 이 책은 한 편의 작품 시작부터 끝까지 서사를 따라 줄거리를 더듬어 가면서 해당 사건, 서사, 비주얼, 은유들이 어떻게 발현되고 또 연결되는지에 대한 다소 평이한 작법을 택한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렌즈는 분명 정밀하고 선명하기 때문에 읽어 내려가는 문맥의 흐름도 매끄럽고 작품 간의 연결고리도 작위적이지 않다. 하물며 저자는 한국인이 아니다! 따라서 이 흐름을 감지하는 역행의 서사는 영화라는 언어가 문화와 국경을 넘어서도 유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그의 작품을 관람한 이에게는 영화의 이해와 해석을 도와줄 참고서와도 같고, 아직 관람 전이라면 미리 읽고 관람해도 좋을 만한 지침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물론 <기생충>만 빼고 말이다. 먹고살기 바빠 <미키 17>을 아직 관람하지 안(못) 했다. 선선한 가을이 오기 전엔 꼭 봐야지.
<봉준호>는 완성형 봉준호를 만들어주는 쉬운 버전의 퍼즐 조각이다. 그의 팬이라면 앞으로 그 퍼즐을 통해 영화라는 예술 장르를 더 깊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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