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줬으면 그만이지 ㅣ 김주완 ㅣ 피플파워

by 잭 슈렉

결혼하면서 집도 합치고, 통장도 합치고, 뜻과 의지 그리고 미래를 나란히 하길 바랐다. 결혼식 날부터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고, 용돈을 받아썼다. 교통비나 직장에서의 점심 외 순수 용돈으로 월 7만 원을 받았다. 여유 있는 돈은 아니었지만 아끼면 또 남는 달도 생기는 그런 수준이었다. 서른에 상투를 틀었다. 결혼하면 어른이라 했다지만 전혀 그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4년 뒤 첫째가 태어났다.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나도 모르게 아주 조금이나마 내가 가진 것을 (거창하게나마) 사회에 돌려줘야 할 것만 같았다. 지지하는 정당과 어린이재단에 사이좋게 만 원씩 2만 원을 후원했다. 결혼 18년 차인 지금 용돈은 무려 만 원이 인상되어 8만 원이 되었고, 월 2만 원의 후원금은 변함이 없다.


11년째 출퇴근을 하며 이용하는 지하철역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이다. 2호선 4호선 5호선이 연결되는 도심 속 공간이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외국인은 물론 어르신들도 적잖다. 인근에 국립의료원이 있어 그런지 모르지만, 출퇴근하면서 출구를 헷갈려 하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다가가 길을 안내해 준다. 손수레를 끄는 어르신들이 계단을 이용할 땐 이미 계단을 다 내려간 뒤여도 다시 올라갔다 내 갈 길을 간다. 대단한 일도 아니거니와 그 순간 그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맞기에 응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맞다.


작년 12월 3일 국가의 질서를 혼란시킨 대통령은 탄핵을 맞았고, 이를 선고한 판사의 오랜 스승으로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라는 부제와 더불어 기자로 활동하는 저자는 그의 삶 속 굵직한 궤적을 이 책에 담았다. 가늠할 수 없는 일, 짐작할 수 없는 일, 그것이 비단 아주 많은 돈을 대가 없이 나눠주고 지원하고 돕는데 써서만 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아름다움을 실천으로 옮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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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고 싶은데 가난해서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이에게 장학금은 숨 쉴 수 있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김장하는 그런 학생들에게 그야말로 무수히 많은 지원을 해왔다. 비단 학자금 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생활비, 하숙비까지 책임지기도 했다. 문화 예술 분야, 자연 생태 분야, 인권 분야, 여성 분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야에 아낌없는 지원을 펼쳤다. 대단한 철학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하물며 공치사는 더더욱 삼간다. 차를 몰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한다. 오래된 공간, 낡은 건물, 집기와 그의 살림살이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베여있다.


조선시대 이전까진 내가 알 턱이 없고, 근현대사를 통틀어 그와 같은 인물은 어디에도 없다고 감히 단언하고 싶을 정도다. 저자가 취재하며 쌓아가는 그의 일화들은 때때로 숨을 턱 막히게 했다. 과연 이럴 수가 있는 것인가. 제목으로도 쓰인 표현대로 "줬으면 그만이지" 주고 나서 이래라저래라 참견조차 없다. 그가 직접 세운 고등학교를 국가에 헌납하고, 전 재산을 대학교에 헌납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열심히 노동하며 벌은 돈은 잇속을 챙기기 위함의 도구가 아닌 더 많은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 쓰이길 바랐던 것 같다.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그를 한 단어로 표현한 내용이 책에 잠시 등장한다. 제아무리 전 세계 글자 중 가장 위대한 것이 한글이라 한들, 그를 표현할 적절한 단어나 형용사는 없는 것만 같다. 하물며 책을 읽었음에도 그 소감이나 감상의 느낌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갈피를 못 잡겠다. 대단한 사람이다. 더욱이 그가 노무현을 만난 일화도 인상적이다. 50여 분 담소를 나눈 뒤 노무현은 그를 좋은 사람이라 칭했다. 이유인즉, 훈수를 일절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 했다. 무언의 신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신념이 이토록 거대한 인물을 이뤄낸 근간인 것만 같다.


내 용돈이 지금보다 조금 더 늘어난다면, 나 또한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은 곳에 후원을 이어가겠다. 김장하가 보여준 헌신과 희생, 나눔에 비해서는 미세 먼지 수준도 안되겠지만 그리하겠다. 더 많은 또 다른 김장하가 이 세상에 꽃피우길 바라며 나 역시 그 밀알이 되길 자발적으로 희망할 것이다.


같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김장하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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