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기술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 l 박승일

기술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 l 박승일 l 사월의 책

by 잭 슈렉

우스갯소리로 <사랑과 전쟁>은 순한 맛이라 한다. 현실은 그야말로 극악무도 하단 뜻이다. 가끔 현실을 반영한 혹은 미래를 예언한 영화들도 적지 않다. 그 영화들 만큼은 매운맛이면 좋겠다. 그래도 아직 뉴스에는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더 많이 나오지 않던가! 그 이유는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흔하지 않으니 그런 거라 믿는다.


단순히 상상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거라 하기에 영화는 이제 현실을 반영하고 또 미래를 충분히 직시할 수준의 디테일을 이루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보다 조금 먼저 그 대안을 제시하는 시점에서 충분히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믿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엄지손가락만 치켜세워도 누군지 다 아는 <터미네이터>에서의 인공지능 스카이넷의 도발도 머지않은 것만 같다. 로봇 강아지가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사람 대신 위험한 일을 하는 시대는 이미 찾아왔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과제를 하고, 쇼츠 영상 대부분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빌어 만든다. 가끔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면 사람 대신 인공지능이 전화를 받는다. 어느 것이 사람이고 기계인지 분간이 안 간다. 떠오르는 것만 몇 가지 언급했을 뿐, 더 많은 기계와 로봇 그리고 인공지능이 이미 우리 일상생활에 그것도 아주 깊게 개입하고 있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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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제목이다. 물론 내 취향에 있어 몹시 마음에 든다. 기술은 인류의 생활과 문명에 지대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하지만, 그것이 인류를 구원하리란 희망은 일찌감치 접는 것이 맞다고 본다. 오히려 편리함을 추구한 각종 기술의 발달이 역으로 인류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억누르고 있는 실정이다. 더 이상 기술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더 많은 고민과 책임감 그리고 해법을 찾아야 할 것만 같다. 부제가 "영화로 읽는 기술철학 강의"인 것을 인지하면서 책속으로 들어가보자.


기계공학과 전공 출신의 저자는 미디어 융합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영화와 기계 간의 상관관계를 책을 통해 풀어나간다. 강의 형태를 띤 구조라 읽다 보면 마치 무대에 오른 저자가 눈앞에 어른 거리는 기분이다. 살짝 어려운 용어들 그리고 쉽게 이해하기에 어려운 구조와 관계들이 수시로 튀어나오는 것은 내 지식이 짧아 그런 거니 넘어가자. 영화 한 편에 할애한 그의 식견과 해석, 그리고 통찰을 따라가면 이미 본 영화가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1부는 <최대주의, 최소 주의, 개입주의>라는 주제 아래 <아바타 2>, <터미네이터 2>, <엘리시움>, <노 임팩트 맨>, <돈 룩 업>을 다룬다. 관람한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책 속에서 수시로 언급하듯 해당 작품을 관람한 여부는 이 책을 이애 하는데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미래를 향한 인간의 도약 과정에서 필요한 필수 조건들의 정당성과 재배치, 그리고 여러 요소들이 갖고 있는 인과 관계가 펼쳐진다. 영화의 주요 메시지를 등에 업고 삼천포로 빠지는 일이 수시로 나타나지만 정신줄만 잘 붙잡고 읽어 내려가면 저자가 의도하는 결말에 아주 조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차치하고, <돈 룩 업>에 대해서 조금 언급하고자 한다. 책에서 언급하는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희대의 촌극은 오늘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지배하는 아이러니를 풍자한다. 정말 중요한 가치에 대한 확립, 그리고 이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외면하는 흐름은 앞으로 정보와 콘텐츠의 가치가 얼마나 더 주요하게 활용될지에 대한 의구심을 안겨준다. 소비되는 것들, 휘발되는 것들, 남겨두고 해석해야 할 것들이 혼재하는 시대다. 골치가 아프다는 핑계로 외면하는 것이 십상이나, 그럴수록 퇴보하고 더뎌지는 미래의 풍경은 우리와 후손들이 감당해야 할 숙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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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인공지능, 인간, 로봇>을 주제로 <트랜센던스>, <아이, 로봇>, <오펜하이머>, <핀치>를 다룬다. 원작을 읽진 않았으나 영화화된 <아이, 로봇>의 그 맥빠지는 기분을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받았다. 또한 이제는 우리의 삶에서 주요하게 자리매김한 인공지능의 역할도 2부를 통해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편리한 것과 좋은 것,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것과 신인류적인 것을 어떻게 잘 구분하고 분류해야 할지는 한참을 더 고민해야 할 것만 같다.


3부는 <(비)인간, 기술, 사회>를 주제로 <트루먼 쇼>, <접속>, <레디 플레이어 원>, <월-E>, <나는 전설이다>, <일라이>가 등장한다. 제작비 대부분을 원작에 대한 로열티로 지불한 <레디 플레이어 원>은 저자가 해석하는 것 이상으로 매력 있는 작품이다. 다소 일차원적인 묘사긴 했으나 인종과 장애 취향과 목적 그리고 게임과 문화 예술에 대한 종합적인 오마주를 가져다 바친 작품이다. <접속>을 통한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경계를 다루는 부분도 매력적이다. 읽으면서 내내 허밍으로 <Pale Blue Eyes>를 흥얼거렸다. 그럴 수 있다면 조금 더 선선해지고 주말 이른 시간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이 음악을 들으며 지금처럼 독서일기를 쓰고 커피를 한잔 마실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달콤하다.


책 전체의 분량도 결코 가볍지 않으나, 영화에 할애한 정보의 양도 제법 묵직하다. 2주간 도서관에서 대여해 한차례 읽고 반납하기엔 다소 미안한 느낌이 들 정도다. 더욱이 언급되는 각종 기술과 사례, 그리고 기술 관련 이야기는 조금 쉽게 순화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하면 좋을 것만 같단 생각도 든다.


<월-E>의 풍경처럼 나락으로 향할 필요까진 없으니까. 스카이넷에 지배당해 기계 인간과 전쟁을 벌일 필요는 없으니까. TV에 갇혀 모두가 트루먼처럼 미디어에 지배당한 채 살아갈 순 없으니까. 인류가 로봇 위에 군림해도 안될 것이고, 로봇과 굳이 친구를 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다.


<책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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