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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 슈렉 Mar 14. 2024

[독서일기] 잡지 만드는 법

잡지 만드는 법: 새로운 시도와 재미를 섞고 엮는 일에 관하여 ㅣ 박지수

음악과 영화에 심취하기 시작한 중학교 시절부터 매달 챙겨본 책은 다름아닌 잡지였다. 하물며 잡지를 살 돈이 없어 매주 종로에 있는 대형서점을 가서 훔쳐보기를 일삼는 그야말로 거지였다. 마냥 좋았다. 잡지를 손에 쥐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다보면 영화감독도 되고 뮤지션도 될 수 있었다. 같은 작품이라도 나와 전혀 다른 의견을 들려주는 평론가들과 기자들의 글빨에 늘 사로잡혔다. 



'작가'라는 막연한 꿈의 포커스는 조금씩 '잡지 기자' 또는 '평론가' 쪽으로 노선을 달리했다. 허나 기대했듯 그 목표를 향해 그 어떤 노력도 나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잡지를 보는 행위만을 몸서리치게 좋아했을 뿐이었다. 



여차저차 두세곳의 직장을 옮기면서 월급이란걸 받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아무 계획 없이 놀면서 일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인연이 닿아 음악잡지 디자인 일을 3년 조금 넘게 했다. 역시 놀면서 일하는 방식이 너무 좋아 가난해도 행복한 20대를 보내던 중 인연이 닿아 다른 음악잡지 편집장과 디자인을 도맡는 본격적인 생노가다의 시절도 보냈다. 남성잡지에도 잠시 엉덩이를 부볐고, 잡지라고 할 순 없지만 잡지같은 비스무리한 책도 두어권 인연이 닿아 기획하고 만들었다. 



예쁜 누나들이 즐비한 패션 잡지부터 정갈한 사진이 주는 맛의 사진 잡지, 로또가 되어야 저기서 살수 있을까 싶은 건축잡지 그리고 말 그대로 좋은 생각 들게 해주는 문학잡지 일상잡지 등... 손에 잡히는대로 읽었고 품었다. 



허나 잡지를 좋아만 했지 그걸 그 다음의 영역으로 유지 발전시키는데는 어리숙했다. 애호가와 전문가 사이에서의 높은 벽을 나는 스스로 넘기를 포기했다. 그 아래 개구멍이라도 뚫어서 기어 들어가면 좋았을 것을... 그럴 용기도 겁대가리도 없었다. 비열하고 비겁했지만 10년이 조금 안되는 내 마음대로 보낸 20대를 이제서야 돌이켜보면 '잡지'만큼 내 20대를 짜릿하게 만들어준 컨텐츠도 없었던 건 분명했다. 



소개하는 이 책은 그러한 잡지를 만드는 A부터 Z까지의 모든 것들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절대 객관적인 내용들이 부담없이 밀려온다. 나처럼 잡지를 좋아하는 애호가가 쓴 책이라면 2%쯤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문가가 쓴 책이라 분량이 넘치지도 않고 너무 디테일해서 인쇄업계에 있는 사람만 알아듣는 전문용어가 범람하지도 않는다. 



평소 좋아하는 잡지가 한권이라도 있다면, 그 잡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짝 몰래 훔쳐볼 수 있는 쌍안경과도 같은 책이다. 그리고 1인 출판 혹은 책을 만드는 일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면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절차에 대한 정확한 구분. 그리고 각 구분에 충실한 설명과 저자의 개인적 경험담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인쇄를 배우기 위해 꼭 충무로를 가야 하지 않아도 된다. 잡지를 익히기 위해 인턴이 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충무로도 가보고 인턴도 되어보면 더 좋겠지만, 잡지의 황금기라고 느끼는 20세기 세기말과 지금의 매체는 너무 다르기에... 나는 겁부터 난다. 



놀고 먹던 20대를 지나 한동안 1인 잡지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기획부터 원고, 디자인을 모두 내가 하고 인쇄만 업체에 의뢰, 고정 배포처에 배포하거나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형식을 구상했었다. 단 한 권도 안팔려도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비용 지출을 계산했으나 그마저도 아깝단 생각이 어느날 들었다. 



그래서 모든 객기는 처자식 없는 홀몸으로 해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툴툴거리고는 십수년도 더 된 묵혀진 잡지를 꺼내 읽는다. 



<책 자세히 보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073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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