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왜 CD를 사?"
앨범을 살때마다 아내가 내게 자주 묻던 질문이었다.
스마트폰 직전까지 전세계를 주름잡던 mp3 플레이어가 활개를 칠때도 나는 여전히 CDP를 고집했다. 쓰던게 고장나서 같은 모델로 한두개를 더 샀고, 지금은 부품용 2대를 포함해 총 5대를 가지고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CD로 듣는 일... 물론 그 전에는 LP로도 들었고 카세트 테이프로도 들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전에는 TV와 라디오로 들었고, 좋아하는 곡이 나올때면 'DJ야 제발 전주에 멘트좀 하지마!'라고 기도하면서 휴지를 우겨넣고 스카치 테이프로 마감한 공테이프를 전축에 넣고는 녹음 버튼을 눌렀다.
한창 음악을 좋아하던 시절에 스스로 만든 질문. 누군가 내게 영화와 음악을 고르라면 난 늘 '음악 51 영화 49'라고 답했다. 음악보다 호흡도 길고 즐겨야 하는 장치가 더 많이 필요했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음악이 한결 더 수월한 장르일 수 밖에 없었다. 하물며 눈감고 몇소절 흥얼거리고 노래부르고 휘파람을 불러도 순식간에 그 음악이 갖고 있는 서사와 감성이 내몸에 깃드니. 이보다 더 효율적인 예술 장르는 없지 않을까 싶었다.
빠듯한 형편에 돈을 모았다. 중학교때는 카세트 테이프와 LP를 계절에 하나씩 장만했다. 그보다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고등학교 시절에는 한달에 한장 CD 사는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잡지는 헌책방 가서 과월호라도 읽으면 됐다. 허나 CD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만원 안팎의 그 앨범을 하나 사면 그 다음달 앨범을 살때까지 매일 들었다. 듣고 또 듣고 계속 듣고 자꾸 듣고 질릴때까지 들었다. 인기있는 비디오 테이프가 플레이어에서 씹히는 일이 있듯, 플레이어에서 CD가 튕길만큼 들었다.
인터넷 주문 따위 없던 시절. 그 소중한 CD를 사기 위해 나는, 레코드 매장을 방문했다. 가까이 있던 동네 매장은 단 한 곳. 그리고 종로 4가부터 종각까지 이어지는 라인. 옆동네 명동을 거쳐 조금 더 확장해 신촌과 홍대가 음악에 갈증을 느끼던 내게 오아시스와도 같은 곳이었다.
CD 한 장을 사기 위해 저 곳을 모두 돌아다닌 것은 아니지만, 사고자 하는 앨범의 장르 혹은 외출하는 장소에 따라 매장은 수시로 달라졌다. 그 와중에 오는 3월 30일에 온라인 쇼핑몰을 결국 접고 마는 향뮤직은 신촌의 오랜 터줏대감이었다. 매장이야 워낙 좁아 터져서 여유로운 앨범 커버 관람은 불가능했지만, 쇼핑몰이 워낙 탄탄했던지라 십수년간 거의 매일 드나들던 방앗간 같은 곳이었는데... 안그래도 쇼핑몰 운영을 접는다고 몇년 전부터 스스로 토로하다가 다시 부활하나! 싶었으나 이제는 결국 작별을 고하게 되고 만 것이다.
빼곡햇던 다방. 술집. 카페. 당구장이 언제부턴가 노래방 비디오방 pc이 되었고, 해일처럼 전국을 뒤덮었던 비디오방은 무슨 블랙홀 속으로 사라진듯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췄다. 비디오방을 한번도 못본 아이들이 지금은 20대 중후반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출발 비디오 여행>은 방영하고 있고, CD한장에 70분이 훌쩍 넘는 음악을 담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초창기 손바닥만한 LP에 한곡씩 담아 여러장을 마치 사진 앨범처럼 구성한 형식으로 인해 우리는 여전히 '앨범'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K-POP이 전세계를 휩쓰는 마당에도 CD는 공장에서 전단지 찍듯 찍어내는데도 번듯한 레코드 매장 하나 없는 시대의 아이러니. 향뮤직의 쇼핑몰 마감도 그 시대의 한 귀퉁이에 얼마나 오래 여운으로 남는 흔적이 될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새로워지고 다양해지고 더 좋은 것이 등장해서 덜 좋은 것은 잊혀지는게 순리는 맞다. 그건 거스를 수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허나, 그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은 유감이다. 빨라도 너무 빨라서 기억하기 벅찰 정도다. 아득히 멀어진 듯한 오래된 추억을 끄집어내서 플레이어에 그때 그 CD를 넣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추모의 방식이다.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향을 피우는 대신 오디오 볼륨을 높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