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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 슈렉 Mar 15. 2024

TV를 끊었으나 드라마는 정주행 해야겠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그날 이후 TV를 끊었다. 뉴스만 끊어도 될법했으나 오랫동안 품고 있던 방송에 대한 불신은 그날 이후로 확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케이블 채널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는 정도가 유일한 TV 역할이었다. 


부지런한 네티즌 친구들 덕분에 TV를 보지 않더라도 유명한 혹은 관심있는 프로그램은 캡처본으로 마주했다. 캡처본으로 채워지지 않는 호기심은 내가 알아서 찾아보면 될 일이었다. 


이후 시간은 흐르고 흘러 포털을 시작으로 인터넷 전체를 어우르는 이슈들이 발생했다. 인터넷 기사도 어지간해선 제목만 보고 넘어가는지라 나름의 철옹성을 굳건히 다졌지만, 드라마만큼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베스트극장' 또는 'TV문학관'같은 단막극도 사라진 마당에 시리즈로 방영되는 드라마는 가끔 너무 몹시 격렬하게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2시간 남짓 이어가는 서사에 싫증을 느낀 것일까. 16부작은 솔직히 부담스럽긴 했다. 하지만 긴 서사가 주는 흐름과 인물과의 관계가 고루하고 지루하지 않은 작품들은 분명 있었다. 그시절 비디오 테잎을 플레이어에 넣으면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던 문구처럼. 단 한 편의 드라마가 인생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그들의 서사에 내 감정을 기꺼이 빠뜨리고도 싶었다. 


결국 내 안에 기준선을 조금 양보하고 타협했다. TV로는 안 볼 터. 종영 이후 이슈가 사라진 뒤 정주행을 해보도록 하자. 그러자. 어릴적부터 있던 백골기질은 또 그렇게 요상스럽게 변이해서 날 괴롭혔다. 어떤 드라마가 인기를 얻어 짧게는 두세달 길게는 1년 동안 회자가 되어도 관련 뉴스 어디에도 클릭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주행하는 그날까지 아끼고 아껴두었다. 


그리곤 1년 뒤 혹은 4~5년 뒤에 그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2~3일에 몰아보거나 1~2주 동안 밤마다 챙겨보았다. 아, 그래. 맞아.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 저 배우 지금은 어떤 작품에 나오지. 아. 조연들.. 저 구성... 드라마가 유행에 민감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닌데도 조금 지나 보면 마치 오래된 졸업앨범을 보는듯한 약간의 낡은 티 혹은 과거의 유산을 들여다보는 타임머신같은 기분도 경험했다. 


허나 그 정주행하는 작품마저도 너무 많게 허락하진 않았다. 감정이입을 쉽게 하는 터라 정주행이 끝나면 감정소모가 지칠정도로 이뤄졌다. 밥먹듯이 영화는 보면서 드라마는 또 이렇게 까탈을 부린다. 몹쓸 성격이다. 그래서 지난 10여년간 정주행 드라마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마저도 너무 많이 보면 먼저 만난 캐릭터들이 사라질까봐 덜썩 겁이 난다. 아끼고 아껴야 할 터.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이제는 편안해진 지안이와 그녀의 아저씨

소주 맛이 단 이유는 오늘 하루가 인상적이었다 해석해주는 박새로이 아버지 

발을 절뚝거리는 아들을 위해 눈덮인 산동네 골목길을 새벽마다 쓸어주던 엄마의 마음

조선인도 미국인도 아닌 그러나 우리가 분명기억해야 할 유진초이와 그때 그 사람들

오래된 드라마지만 영원히 내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고복수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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