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형제 막내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두개 있다. 하나는 다리 밑에서 주웠다는 말로 그렇게 시작한 놀림은 온가족이 합세해서 입을 맞추는 바람에 몹시 완벽한 알리바이를 갖춰 나를 자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막내로 태어나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짧다는 말이었다. 동네 할머니들이 자주 입에 담던 그 말은 들을때마다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오산 그리고 부천에 둥지를 튼 두 형과 달리 나는 여전히 부모님댁에서 숨참고 뛰면 3분 거리에 살고 있다. 인터넷 TV가 말썽을 부린다거나, 얼마전 사드린 세탁기가 멈춘다거나 등등의 긴급 호출은 물론이거니와 가끔 약주에 만취하신 아버지께서 근처 공원에서 쉬고 계시면 스르륵 곁으로 가서 집까지 모셔다 드리기도 한다. 주말마다 두 아이를 보내 절간같은 두분의 헛헛함을 달래드리기도 하며 덕분에 우리 부부는 매주 신혼의 맛도 듬뿍 즐긴다.
당신 식구는 물론, 군식구까지 먹여살리느라 일찍이 백화점 스낵코너, 가정부, 식당 일 등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엄마는 비로소 21세기가 열리면서 '주부'란 이름으로 차분한 뿌리를 집에 내리셨다. 학창시절 누리지 못했던 당신과의 시간을 프리랜서란 이름으로 20대 내내 마음껏 즐겼다. 더욱이 결혼해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도 그 시간은 여전히 유효하다.
바깥 음식이 잘 맞질 않아 10년도 넘게 도시락을 싸갖고 다닌 직장생활. 막내아들 회사에서 밥 제대로 못 챙겨 먹을까 엄마는 매주 반찬을 준비해주신다. 어린이날엔 손주들 주신다고 김밥 싸주시고, 복날엔 삼계탕, 동지엔 팥칼국수도 만들어주신다. 이에 질세라 아버지 역시 엄마를 도와 부부동반 만두 프로젝트는 물론, TV에서 본거라며 배로 깍두기를 만들고 여러 종류의 음식을 취미처럼 즐기신다.
나 역시 받아먹기만 죄송해서 나름의 보답을 늘 한다고 하지만 엄마의 그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 수준이다. 그러던 중 '국밥'에 격한 감동을 느껴버린 첫째를 위해 손수 갈비탕을 준비하게 됐다. 준비과정에서 부모님 드실 것도 마련했지만, 최종 그림은 부모님댁에 가서 일요일 점심을 다같이 갈비탕을 먹는 것으로 스케치했다.
미리 예고를 전하자 아버지께선 '늬집 가스비 많이 드니 와서 끓이라'셨고,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드시기 민망하셨는지 물에 불린 당면이라도 준비하게 해달라 하셨다. 토요일 아침부터 핏물을 빼고, 초벌로 끓이고, 레시피에 맞춰 갈비탕을 끓였다. 계란 지단 만큼은 냉장고에 넣어두면 맛이 없을 터, 일요일 오전에 차분한 마음으로 준비를 마쳤다.
음식을 준비하는 일. 엄마의 영향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생활 습관. 술이 좋아 두 번의 술장사. 어지간한 한식은 물론 먹어본 음식은 레시피 없이도 뚝딱 만드는 야매 실력까지. 메인은 갈비탕이지만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계란 지단에 정성을 쏟았다.
신나는 마음으로 부모님댁으로 향했다. 커다란 상위에 빠짐없이 음식을 준비하고 뜨끈한 갈비탕을 한그릇씩 내놓았다. 예고를 들으신 후 묘하게 궁금했다면서 아버지는 생각보다 맛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엄마도 맛있다 하셨다. '국밥에 환장'한 첫째도 그리고 둘째도 맛있게 먹어주었다. 나노 입맛을 지닌 아내도 식당에서 먹는 것 이상으로 정말 맛있다고 했다. 국물 한모금과 함께 들이키는 소주 한잔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가수 윤종신이 매달 한곡씩 발표하는 '월간 윤종신'이 떠올랐다. 어떤 메뉴가 될지 모르지만 한달에 메뉴 하나씩 준비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아버지는 허허 웃으셨고, 엄마는 힘들다고 그러지 말라 손사래를 치셨다. 어려운 일인가. 막내아들 평생 입에 넣을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는데 말이다.
한달에 한 끼, 기대하시라
'월간 막내아들'
개봉 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