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도 없었다. 아니 필요도 없었다. 대학교 후문 구석 2층에 자리한 공간은 좁고 허름했다. 4인용 테이블 달랑 5개, 주방과 홀의 구분도 없이 모든 것이 오픈된 구조였다. 몇몇 알바는 경험이 있었으나 요식업과 관련된 알바 경험은 전무했다. 그런데도 술장사가 하고 싶어서 덜컥 시작을 했다. 간판이 없으니 가게 이름도 없었다. 허나 사업자는 신청해야 했으니 지인이 귀띔을 해준 '소나기'로 이름을 지었다. "소주가 나를 기다리는 곳" 이름에라도 낭만이 실린다.
전임자가 운영한 방식의 대부분을 그대로 차용했다. 관련된 경험이 없으니 그게 맞다 싶었다. 매출은 나쁘지 않았으나 좋지도 않았다.학기중엔 즐거웠고 방학땐 한가했다. 20대 중반때 했던 가게라 나 대학다니던 시절을 떠올렸건만, 불과 몇년 사이에 아이들의 음주 문화는 많이 바뀌었다. 그들 탓을 하는건 창피한 일이라 삼가하겠다. 까먹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 아니던가.
2년 조금 못되는 시간을 즐겼다. 음향 시설에 투자할 형편은 안되어 가게에서 틀을만한 레퍼토리를 축약해 2~3주 단위로 반복했다. 입대 앞둔 녀석이 보이면 <이등병의 편지>를 슬그머니 틀었고, 헤어진 녀석 사귄지 백일된 녀석들이 보이면 그에 맞는 곡도 틀었다. 상황에 맞는 곡이 나오자 자기들 얘기를 엿들었냐며 따지는 녀석도 있었다. 좋아하는 곡인데 여기서 그 곡을 들으며 술마실줄 몰랐다며 인사를 건넨 녀석도 있었다. 이틀전에 헤어진 어떤 녀석은 정말 정말 괜찮으니까 자기를 꼭 한번만 안아달라고도 했다. 마음은 고마우나 사양했다.
간판 없는 가게를 자기들끼리 '레어'라고 이름 붙여선 매주 찾아온 동아리도 있었다. 그들은 특히나 그리 나이 들어보이지 않는데 술장사를 하는 내 정체를 몹시 궁금해 했다. 참고로 가게가 만석에 별도 주문이 없는 때에 나는 가스렌지 앞에서 쭈그려 앉아 늘 책을 읽었었다. 그런 연유로 자기들끼리 내 나이를 맞추는 내기를 하는가 하면 수시로 자리를 마련해 사장 아저씨를 앉혀놓고 온갖 짖궂은 질문 공세도 퍼부었다. 그 중 한명은 그로부터 6~7년 뒤 맥주 장사를 할때 손님으로 다시 만나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가게 앞에 제법 큰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술마시던 남자 손님 넷은 어쩌다 그런 내기를 하게 됐는지 나무에 올라가 가게로 들어오는 시도를 했다. 장사를 하며 가장 놀란 순간이었다. 다그치는 대신 서비스 안주로 그 열정을 달랬다. 박카스 사다준 손님. 반찬으로 먹고 싶다며 안주만 따로 포장해간 손님. 인기 많은 교수님을 모시고 와서는 뜬금없이 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학생도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라 달리 인테리어 할 것도 없었다. 오랫동안 내가 찍은 구름 사진을 인화해 가게에 가득 붙였고, 인상적인 영화와 록밴드의 포스터 몇장이 군데군데 이어졌다. 살짝 술이 취해서는 사진마다 손가락질을 해대며 어디서 찍은거냐고 취조하듯 내게 묻던 녀석도 있었고, 저 공연 자기 너무 가고 싶다고 밴드의 근황에 대해 묻는 녀석도 있었다.
허나 가게를 찾아준 보통의 손님들도 고맙지만 정말 고마운건 내 친구, 지인들이었다. 흔히 친구가 술집 알바를 하면 놀러가더라도 사장 눈치를 봐야됐겠지만, 친구가 사장이다. 그래서 녀석들은 가게 들어올때 셔터를 아예 닫고 들어왔다. 한가한 주말이면 이른 시간부터 축제가 열렸다. 오디오 볼륨은 평소보다 두세단계 더 올렸고, 자정이 지나도록 술을 마셨다.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공간. 현실과 완벽하게 단절된 차원의 느낌. 밤새 들을 음악이 있었고, 냉장고에는 소주와 맥주가 가득 채워진 곳.
더욱이 동호회에서 알고 지낸 몇몇 지인은 아주 가끔. 술생각이 났음에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내 가게를 찾아왔다. 분주한 시간을 가장 바깥 테이블에 앉아 기다려주었고, 손님들이 모두 빠지고 나서야 나와 마주하고는 건배를 나눴다. 많은 말을 나누진 않았어도 미지근해진 소주와 음악 몇곡으로 자정이 훌쩍 지난 시간까지 이어지는 담소는 제법 따스했다.
술마시러 와놓고는 저녁 전이라며 아예 라면을 사갖고 온 놈들. 간이 침대 하나두고 술마시다가 틈틈이 잠도 좀 자면 안되겠냐고 윽박지르던 놈. 술을 못마신다며 장사하는 동안 한 번 팔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던 건물주인은 가게 정리하는 날 앞으로 잘 살라는 말과 함께 별도로 용돈도 주셨다. 1층 부동산 아저씨는 좀 얄미워서 별로였고, 지하에 있는 출력소 아저씨와는 소주 한잔 못한게 내심 마음에 걸렸다.
거짓말처럼 여러 장면이 고스란히 기억난다. 서늘하고 눅눅한 계단을 가득 메운 공기부터 백열등으로 빨갛게 달아오른 가게 풍경을 가로질러 진하게 퍼지는 소주 냄새의 여운까지 펼쳐진다. 많이 웃었고 그만큼 취했었다. 계산이 없던 시절이라 더 행복했다. 더 팔면 즐거웠고 덜 팔아도 그럭저럭 버텼다. 20대의 한복판, 내 기억은 가게 안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다.
소나기는 잠깐 내리는 비라지만, 박제된 기억만큼은 오랫동안 이어질 소중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