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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 슈렉 Apr 02. 2024

[독설일기] 짜장면: 곱빼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짜장면: 곱빼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ㅣ 박찬일 ㅣ 세미콜론

서울사는 삼촌이 시골에 사는 조카들을 초대했다. 63빌딩과 롯데월드는 물론 수족관과 한강 유람선도 탔다. 스테이크, 햄버거, 피자, 치킨, 스파게티까지 배터지도록 먹였다. 뿌듯해하는 삼촌의 표정과 달리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표정은 불만에 차 있었다. 


"칫! 삼촌 완전 짠돌이야. 짜장면도 안사주고 말야!"


기억나는대로 적느라 약간의 각색이 있겠으나,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들을 수 있던 농담에는 짜장면이 위치하고 있는 우월한 존재감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맞다. 그렇다. 짜장면이다. 전국민의 소울 푸드. 국립국어원이 왜 그랬는지는 모르나 '자장면'을 '짜장면'으로 표기법을 바꾸는 데에도 많은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진심이 담겼던 것이다. 지금이야 흔하디 흔한 메뉴지만 내가 어릴적만 하더라도 짜장면은 1년에 한 두 번 먹는 연례 음식이었다. 더욱이 탕수육을 곁들이는 건 졸업식이나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세트메뉴 따위는 20세기와 함께 만들어진 신식 메뉴. 짜장면에 탕수육 그리고 서비스로 나온 군만두까지 먹으면 그야말로 그날이 생일이고 인생 최고의 날이 되었다. 


저자의 짜장면 사랑은 순위를 매긴다면 전국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대단하고 또 뜨거웠다. 단 하나의 메뉴일 뿐이지만 그 메뉴를 해석하고 접근하는 저자만의 방식은 분명 그만이 할 수 있는 프로의식이 다분한 면모를 보여줬다. 오래된 집을 찾는 발걸음. 단순히 짜장면이란 음식이 일상에 어떻게 녹아드는지에 대한 감회. 시대가 바뀌면서 짜장면이 위치하고 있는 대중적인 위치에 대한 고민까지도 분명 감칠맛이 느껴진다. 


특히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짬뽕전문점 사이에서 짜장면의 아이덴티티를 걱정하는 그의 마음은 진심으로 고마울 정도로 따뜻하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익숙한 것에 대한 배척, 그리고 그 틈새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장사 수단으로 발전시킨 새로운 형태의 마케팅이 우리의 짜장면 식습관을 제법 많이 바꿔놓은 것이다. 


관련하여 내가 사는 동네에도 몇년 전에 제법 규모가 큰 짬뽕전문점이 문을 열었다. 24시간 풀타임 영업하는 그 집은 당시 두 그릇 가격으로 짬뽕 한그릇을 파는 초강수를 펼쳤다. 저러다 망하지. 누가 저기서 짬뽕을 먹겠어? 하지만 나만의 기우였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성행중이고 나 또한 자의반 타의반 그곳에서 파는 메뉴를 거의 다 먹었을 정도다. 


허나 그 집에서도 짜장면의 입지는 몹시 왜소하고 형편없다. 마치 짬뽕을 파는 집인데 가끔 여기서 짜장면을 시키는 사람들을 위해 위로의 차원에서 메뉴를 만든듯한 느낌을 받는다. 궁금해서 한번 먹어봤으나 짬뽕과는 전혀 다른 결을 맛볼 수 있었다. 의도적인 것일까. 어쩌면 음모일까. 지구를 온통 네모로 만들고자 하는 네모의 꿈처럼 짜장면도 짬뽕의 꿈에 짓밟히고 만 것일까!


어릴적 요리프로그램을 즐겨 봤다. 집에서 해먹을 형편이 못되니 텔레비전을 통해서라도 대리만족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그 많은 요리들에 제법 자주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재료가 통후추, 파슬리, 월계수 잎 등이었다. 저런걸 집에 늘 비치해두고 사는 사람이 있다고? 말도 안되지! 


더욱이 음식을 주제로하는 책들이 마치 저 요리프로그램처럼 딱딱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경우들도 더러 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비밀의 동굴에서만 볼 수 있는 남의 다리 긁는 느낌의 요리 소개도 있고, 읽으면서 요리가 떠오를 정도면 좋으련만 너무 깊게 들어가 과학의 영역에서 요리를 이야기하는 경우들도 있다. 무엇보다 반복적으로 소개되는 여러 요리들의 비슷한 패턴이 주는 지루함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기획이 아닐 수 없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몹시 신선하고 새롭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저자의 개인적 주관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짜장면이라는 테마를 기준으로 상징적으로 언급되어야 할 사례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다. 그래서 읽다보면 짜장면 한그릇 먹으면서 읽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개인적으로는 <환상의 커플>에 상실이가 떠올라 막걸리에 짜장면을 격하게 들이 붓고 싶었다. 


책을 통틀어 저자가 언급한 이 표현이 짜장면이란 음식이 갖는 궁극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짜장면 먹는 동안엔 슬픈 생각을 한 적이 없어"


그렇다. 짜장면은 언제나 늘 우리에게 즐겁고 기쁜 음식이다. 


<책 자세히 보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5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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