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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 슈렉 May 19. 2024

퇴근하는 길

6시 정각. 단 1초도 허비할 수 없다. 6시가 되는 순간 '시스템 종료'를 클릭한다. 이미 난 충분히 8시간 동안 기꺼이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바쳐서 일을 했기 때문에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사무실을 빠져나와야 한다.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고개를 돌려 '수고하셨습니다~'를 명랑하게 외친 뒤 지문인식기를 찍는다. 계단을 내려가며 아내에게 카톡으로 'ㅌㄱ'을 보내고는 비로소 건물을 빠져나온다. 그 순간부터 다음 출근까지는 일절 '일 생각'은 머릿속에서 싹 지워버린다. 


여러 무리의 중고생과 대학생들 틈바구니를 요리조리 피해 서둘러 지하철에 오른다. 출근은 늘 20분 먼저 하기에 열차 한 번 정도 놓치는 게 대수롭지 않지만 퇴근은 전혀 다르다. 5초 차이로도 짧게는 2분 길게는 5분 넘게 지연되기 일쑤. 굳이 앉지 않아도 좋으니 분주한 발걸음은 본능에 기인한다. 



꼴랑 다섯 정거장. 시간으로는 10분 남짓. 스마트폰은 보기 싫고 유리에 비치는 오징어를 닮은 내 얼굴을 보는 건 더더욱 싫다. 손에 쥔 책 한 권, 몇 장 넘기지 못하는 글자들이 마냥 즐겁다. 아주 가끔 나처럼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역시 나처럼 포스트잇을 책갈피로 쓰는 사람을 보면 괜히 반가워 말이라도 붙이고 싶다. 행여 오징어 보고 놀랄까 봐 마음으로만 인사한다. 


모두가 6시 동시에 퇴근을 하니 퇴근길 지하철은 그야말로 지옥철이 된다. 나야 탑승하는 역이 운 좋게 제법 한가한 편이라 그런 일이 없지만, 인파가 몰리는 역에서는 열차에 타지도 못한 채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그 길마저 시달려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모두가 9시까지 출근하고 낮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을 먹고, 또 6시에 퇴근을 해버리는 세상. 간격을 더 넓게 만들어서 식당도 점심 장사를 한두 시간이 아닌 네댓 시간 동안 쭉 이어하고 말이다. 출퇴근 시간, 점심시간을 골고루 분배해서 더 많은 여유와 수익 그리고 정신적인 안정을 찾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고민해 볼 필요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내리막 계단은 차분하게 걸으나 올라오는 계단은 은근 재미있는 순간이다. 한 개씩 잔걸음으로 올라도 즐겁고 두 개씩 껑충껑충 뛰어도 좋다. 아내가 가르쳐 준 방법대로 적당히 힘을 분배하고 운동하듯 오른다. 꼴랑 숨쉬기 운동과 손에 쥔 술잔을 입에 털 때의 손목운동이 전부이기에, 그렇게라도 잠시 잠깐 근육이란 걸 써본다. 



외딴 섬처럼 놓인 출구를 나와 길을 건너기 위해 잠시 머무는 횡단보도 앞. 퇴근길 중 가장 시간이 더디 가는 순간이다. 본격적으로 막히는 진입로 초입이라 자동차들도 길게 늘어져 있다. 꽉 막힌 도로에 멈춰 선 자동차들을 보면 조금 전 플랫폼에서 열차에 탑승하지 못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땅 위도, 땅 아래도, 어느 곳도 시원한 곳이 없다. 갑갑한 도시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 간다. 


출근길에 본 야채가게 할머니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신다. 미싱 공장 역시 아직 셔터를 내리기 전이다. 보름달만큼 커다란 보따리를 실은 오토바이들이 일방통행 길을 거슬러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출근길에 마주하는 사람처럼 퇴근길 역시 자주 마주치는 익숙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 또한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집에 거의 다다르면 볼 수 있는 노부부는 또 저 멀리서 리어카에 잔뜩 폐지를 싣고 어디론가 향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민과 달리 이제 막 하루 업무를 시작한 환경미화원이 골목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무거운 쓰레기봉투와 결코 향긋하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수시로 짊어진다. 단독주택이 즐비한 동네라 공동주택의 그것과는 달리 쓰레기 폐기 환경은 많은 부분 열악하다. 그런 연유로 늘 고맙고 또 감사한 마음을 어색한 목례로만 전한다. 


6시 30분. 퇴근 완료. 행복한 시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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