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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미 Sep 17. 2017

우울한 도시의 축제



 루체른의 랜드마크인 카펠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지붕이 있는 다리다. 다리 내부 천장에는 스위스와 도시의 수호성자인 생 레오데가르와 생 모리스의 일대기와 같은 루체른의 역사적 장면들을 담고 있다.


 

아담하고 귀여운 집

 

 루체른은 1386년 외부의 공격에 대비해 루체른 전체를 둘러 성벽을 쌓았다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이 파괴되어 구시가 뒤로 일부만이 남아 있고 9개의 타워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루체른 전망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에 무체크 성벽 타워다. 이 타워가 여름에만 운영을 해서 타워로 올라가진 못하고 주변을 둘러 봤다.



 루체른의 또 다른 랜드마크 빈사의 사자상. 사자는 죽어간 스위스 용병들을 상징하며 심장이 찔렸음에도 부르봉 왕조의 백합 문양이 새겨진 방패를 지키고 있다. 왕실에 충성스러운 용병들의 모습을 찬양하고 있다. 사장 위에는 '헬베티아(스위스)의 용감함'이라고 새겨져 있다.


 프랑스 혁명 도중 분노한 수만의 파리 군중들이 튈르리 궁으로 진경할 때, 프랑스 국왕 루이16세를 지키던 프랑스군 근위대마저 모두 도망간 상황이었는데, 루이16세가 고용했던 스위스 용병들은 단 한명도 이탈하지 않고 혁명군에 맞서 왕을 지키다 전멸했다고 한다. 혁명정부와 군중들은 외국인 용병인 이들을 죽일 의향이 없었고 조용히 떠나면 보내줄 생각이었고, 왕의 경호만 담당할 뿐 지배계급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싸운 이유는 이후 죽은 병사의 품에서 발견된 유서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만일 그들의 신의를 저버리고 도망친다면 이후 그들의 후손들 역시 신의를 잃어 용병으로서 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과 사에 고귀함이 따로 있으랴 하지만, 당시 스위스 용병들의 신의에 내 삶을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사소한 것에 눈을 치켜뜨고 그것이 마치 내 신념인냥, 정의인냥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루체른의 거리. 가문의 연대기를 벽화로 장식한 옛 건물들이 많다. 카펠교, 무제크성벽, 빈사의 사자상을 죽 도는데 반나절 밖에 걸리지 않는 작고 예쁜 동네다. 맑은 강을 끼고 있어 한적하고 조용하다. 마침 루체른에서 피아노 축제가 있었고 개막 공연이 있었던 날이었다. 공연장으로 가서 문의를 했더니 학생이면 일반가격의 1/3인 20프랑에 즐길 수 있었다! 숙소에 잠깐 돌아와 옷을 따뜻하게 챙긴 뒤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티켓을 구매했다.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다. 공연을 보기 전 따뜻하게 몸을 데우고 싶었다. 중앙역 안 식당으로 들어갔고 맛은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와인 한 잔을 마시니 기분이 좋았다.

 예브게니 키싱, 슈베르트와 스크리아빈이 곡을 연주했다. 처음 슈베르트의 곡은 정말 졸렸다. 처음 듣는 곡인데 단숙하고 익숙해서 재미없는 멜로디다. 자장가 같았다. 겨우겨우 집중을 해내면서 연주는 곧 스크리아빈의 곡으로 이어졌다. 눈을 감고 감상해 봤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좋았던 곳 중에 음악에 어울리는 곳들이 스치듯 떠올랐다. 베르사유 궁전의 스산한 가로수길, 평화롭고 아름답던 스위스의 산맥과 강.

 마지막 곡 끄트머리엔 왠지 모르게 슬픔에 코끝이 찡해졌다. 아직 십여일 정도는 남은 여정에서 한국에 있는 집 생각이 많이 났다. 루체른은 우울하다. 단순하게 지어진 선벽, 으스스한 중세의 그림이 그려진 낡은 다리들과 건물들. 세상 제일 처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빈사의 사자상. 그나마 피아노 '축제'라고 하는 단어가 빠진다면, 별거 없는 동네라고 해도 억울하지 않을.

 숙소에 틀어박혀 있다간 더 우울해질 것 같아서 피아노 공연을 꼭 보려한것도 있다. 오히려 앵콜곡으로 연주한 밝은 곡 때문에 숙소로 돌아오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낮은음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안으로 밑으로 깊이 파고드는 느낌이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전개가 펼쳐지니 구름 밑으로 푸르른 바다가 펼쳐졌다! 호주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할 때 내려다 보았던 풍경이 보였다. 그러다가 해변가로 내려가 신명 나게 춤을 추는 것이다. 이런 상상을 불어넣은 피아노 연주, 엄청난 자극이었다. - 2013. 11. 16.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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