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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미 Dec 30. 2017

다시 간다면, 베네치아

 베네치아로 오는 열차 안이 너무 건조해서 자꾸 깨느라 창문 밖을 봤는데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새벽 눈길을 달리는 고속 열차에서 꾀죄죄한 모습의 나를 떠올리니 고독한 느낌이라 빨리 다시 잠들고 싶었다. 동이 트니 그런 마음도 사라지고 밝은 빛 때문에 더 누워있고 싶었다. 베네치아에 대한 기대감은 없이. 그렇게 도착한 베네치아는 파리보다 더 낭만적이었다. 짐을 숙소에 맡겨두고 부라노섬을 향하는 길에, 비 갠 뒤의 본섬은 맑고 깨끗했다. 


 

 부라노섬에서 다시 본섬으로 돌아와서는 베네치아의 미로같은 골목을 한참헤매다 리알토 다리와 산마르코 광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종루에 올라 전경을 보지 못한 아쉬움에 비발디 연주는 꼭 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비발디 공연을 한마디로 표현 하자면 'Fall in love with Venice'다. 비바디의 사계가 현악 3중주로 연주된다. 현악기는 황홀하다가도 애절해지다가도 다시 우아해지고, 다시 기세가 등등해진다. 현악기의 음색이 잘 살아나는 비발디의 사계. 


 두번째 곡은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와 함께 약간은 어둡고 구슬픈 음색을 살린 곡이었고 마지막 곡은 첼로를 위한 곡이었다. 첼로라고 하면 보통 무반주 첼로곡이 가장 유명한데, 첼로가 마치 바이올린처럼 현란하게 연주되는 것을 들으니 항상 고용하고 조용한 첼로가 자신을 폭발시키는 것 같아 더 격정적인 느낌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기차를 타고 있으려니 부라노에서 토첼로로 잘못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베네치아의 풍경을 바라봤을 때의 정취가 떠오른다. 여행 온지 2주가 넘었고 이제 몇 일 남지 않았는데, 10월까지 일을 하고 있었던 사무실 공간이 다른 세계처럼 희미하게 느껴진다. 마치 꿈 속에서나 다녔던것처럼 제주에서의 일상은 희미하고 여기 베네치아에 있는 나는 환영 같다. 테테의 음악을 들으며 해질녘의 베네치아를 바라보는 것은 너무 좋은 일이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리는 상쾌해진다. 여행의 짜증스러움이 쉽게 부서진다. - 2013. 11. 21.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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