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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미 Aug 19. 2017

런던, 런던, 런던!


숙소 근처 벅스홀 정류장


 아침부터 비가 왔고, 정말 놀라울만큼 맛이 없는 빵으로 배를 대충 채우고 내셔널 갤러리로 향했다. 런던은 교통이 정말 편리하고 안내나 표지판이 잘 돼 있어서 여행객들에겐 다니기 정말 편한 곳. (런던 다니다 파리에 가면 런던이 얼마나 잘 되있던 곳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길을 건널 때에는 신호를 꼭 지키지 않아도 돼서 더 편하다. 차가 안다니면 빨간 불이라도 그냥 지나가면 된다. 겁나 편하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열 걸음 안팎이면 건널 수 있는 좁은 길들이 많아서 파란 불 켜질 때까지 보행자들 기다리게 하다가는 길만 더 미어터질 것 같은 구조다.


 어쨌든, 지하철역 안에서 오이스터카드를 사겠다고 기계랑 씨름하다 결국엔 창구에서 오이스터 카드를 사고 트라팔가 광장까지 도착.


트라팔가 광장


 넬슨 제독의 동상이 높게 서 있는 트라팔가 광장의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사자. 사자 등에 타서 사진 찍고 싶었는데 저 밑단 높이 자체가 내 키보다 훨씬 커서 오르기가 너무 어려웠다. 여기서 찍은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 어떻게 올라갔냐고 물어도록 하자.



 스커트 입고서 올라가기는 포기했지만 겁나 멋진 사자! 영국이 프랑스와 전쟁에서 이기고 전장에서 쓰던 프랑스의 대포들을 모아 녹여 만들었다는 사자들. 지금 쓰이고 있는 모든 무기들도 모두 모아서 세상의 중심에 사자 한 마리를 만들어 놓으면 어떨까 하는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해본다.


 트라팔가 광장은 이후 런던을 돌아다니면서 자주 지나쳤고 광장의 분위기에 끌려서 지나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덩치 큰 사자도 좋고, 광장 한 켠에 있던 모던한 파란수탉 동상도 좋았다.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푸른 빛을 발하는 '위트'
내셔널 갤러리는 공사중


 트라팔가 광장에 위치한 내셔널 갤러리. 비수기는 비수기인지, 어딜가나 공사중 보수중. 영국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대부분 무료. 방대한 양의 미술품들로 세 시간을 이 곳에 쓰고도 다 보지 못했다. 르네상스, 바로크 시기의 미술품도 많았지만 금박장식의 환하게 빛나는 중세미술이 더 재미있다. 어떤 중세 미술품을 보면 오히려 현대미술과 비슷하게 봉니다. 어떤 것들은 색감이 너무 좋은 것이 신기해서 한참을 보고 있기도 했다. 중세시대를 미술의 암흑기라고 표현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중세의 회화는 금빛으로 빛난다.


 엄청난 시각적 자극들로 세 시간을 보내니 배도 고프고 피곤하기도 했다. 일단은 빨리 점심, 점심!



 비가 귀찮게 추적추적 왔지만 나름 운치가 있었다. 돌아다니는 길에 작은 정원에도 들어서 보고. 런더너들은 이 정도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우산 쓴 사람이 20, 안 쓴 사람이 80.



 영국에서 그나마 먹을만한 음식이라는 피쉬 앤 칩스. 시드니에 있을 때 종종 먹을 때마다 참 맛있었는데, 이 집것은 느끼한 편이다. 그래도 흰살생선은 언제나 맛있으니까 튀김옷을 벗겨서 먹으면 괜찮다.


빅벤을 보고 많이 신났구나


 국회의사당 뒷 편 가로로 길게 깔린 벽과 높은 첨탑. 사진에선 러플과 레이스가 심하게 달린 촌스러운 블라우스가 떠오르는데 실제로 보면 그렇진 않다.


런던아이, 낮에 봐서 조금 떨어지는 감흥


 도착한 날부터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했다는 런던. 바람 세기가 마치 제주 같았다.



 런던아이와 빅벤! 셜록의 OST가 들려오는 듯. 고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귀여운 런던아이. 이렇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묘하게 어울리는 곳이 런던인것 같다. 내셔널 갤러리 앞 파란수탉도 그랬고. 보수적인 편인 영국인들이기에 딱 필요한 만큼의 변화를 준다.



 바로 맞은 편이 웨스터민스터 사원. 지하철 입구마저 마음에 든다. 영국 국기의 색을 딴 표지판들. 이것도 딱 필요한만큼의 디자인. 눈에 띄고 깔끔하고 영국스럽고. 런던의 2층버스, 블랙캡, 빨간 우체통, 빨간 공중전화 박스까지 다 부러워서 제주에도 가져가고 싶다고. 중국인 취향으로 변해가는 제주의 중앙로와 칠성통이 떠오르자 마음이 쓰려온다. 따흐흑...


웨스터민스터 사원


 전쟁으로 죽은 이들을 애도하는 기간이어서 런던의 많은 사람들이 왼쪽 가슴에 붉은 꽃모양 브로치를 달고 다녔다. 그 꽃이 사원의 십자가에도 달려 있고 버스 광고판에도 붙어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옆 쪽으로 한국 정부관계자 같은 사람들이 영국경찰과 말을 나누고 있었다. KBS, MBC 카메라도 보이는걸 보니 대통령이 방문할 예정인것 같았다. *당시에도 '나라 꼴이 이 모양인데 유럽 순방을... 썩을...'이라고 되뇌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면서 해외유람 한 503


 

 버킹엄 궁전으로 가는 길. 날씨가 조금 개어서 새파란 가을 하늘 아래 낙엽이 쌓인 가로수길을 걷고 있으니 한국에서의 찌든 생활은 한낱 꿈 같다. 나 진짜, 레알, 런던에 있는거야?



 아침부터 날씨가 안좋아서 교대식은 일찌감치 최소됐고 아주 간소한 교대식을 볼 수 있었는데 그냥 귀여운 느낌. 화려한 대문에 비해 버킹엄 궁전 자체는 꾸밈이 없다.


 마냥 들뜬 런던의 첫 날. 버킹엄 궁전을 보고, 우연히 들어간 버킹엄 기념품샵에서 공주같은 느낌을 즐기고, 세이트 제임스 공원을 지나 마저 다 보지 못한 그림들 때문에 다시 내셔널 갤러리로 향했다.


 * 나는 미처 못 본 그림들을 보러 내셔널 갤러리로 갔다. 모네, 마네, 루느아르, 고흐처럼 유명화가 외에도 마음에 드는 화가들이 있었다. 고흐보다 강렬했던 드가의 작품들, 빌라드의 화려한 그림들, 고갱의 색감 좋은 정물화, 헤메스조의 인상적인 인테리어화, 알프레드 시슬리, 카라조... 가장 맘에 들었던 칼로스의 <Dead Jejus Supported by Two Angels>. 죽은 예수를 부축하는 두 아기 천사. 이 소재는 다른 그림들에서도 많이 다뤄지는 것이지만 특히 칼로스의 그림에서는 연약한 모습의 예수와 그를 향히 처연한 표정을 짓는 아기 천사의 표정이 정말 아름답고 드라마틱 했다. 마치 연인같은, 사랑해 마지 않는 연인같은 모습이었다. -2013. 11. 5.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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