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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Jul 27. 2020

겨울나비. 37 만화가와 소년

우리 어린 시절의 영웅과 조우

소년의 집은 . 소년은 만화가가 되고 싶습니다. 소년은 자신이 그린 만화를 팔려고 여러 만화 출판사 문을 두드립니다. 퇴짜 맞고 가는 한겨울 귀갓길은 늘 춥고 배고픕니다.

그 무렵 약동이는 라이파이(산호)와   서로 1~2등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합니다.



소년은  좋아합니다. 만화가에게 편지를 보낸 지  답장을 받았습니다. 소년이 보낸 그림에 흥미가 있으니 자기 집으로 오라며 주소와 약도가 왔지요.

서대문 영천 전차 종점 교도소  산허리 판잣집 달동네 골목을 헤매며  만화가 집을 찾아 헤맵니다.

소년은 소나기 만나 흠씬 몸이 젖었어도 물 만난 개구리처럼 신났습니다. 만화가는 소년을 보고 깜짝 놀라며 반깁니다.

“ 이 비 맞고 온 걸 보니   찾아왔냐?”

싱긋 웃으며 만화가는 물을 만큼 두 만화 주인공은 서로 경쟁하던 때였지요.

처음 만나고서 소년은 토요일마다 학교가 파하면 동대문에서 서대문 영천까지 거의 2시간 걸어서 만화가를 만나러 갑니다.

 값으로 호떡 한 개로 요기하고서 허기진 배로.

무릎 관절이 아픈 만화가는 소년이 드나들 무렵에 만화 그리는 일을 접고 가게 근처 다른 집 문간방으로 혼자 옮겨갑니다. 고교 시절에 밴드 반에서 색소폰을 불었던 만화가는 가끔 노란 샤스 입은 사나이를 키타로  소년에게 연주를 들려줍니다. 방 한쪽에 몇 권 있는 잡지 속에는  쉴 셀버스타인이  그린 여행기가 있는데 만화가는 그를 부러워하면서.

“나도 이 친구처럼 자유롭게 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싶구나.”



노란 셔츠 입은 사나이도, 만화가도 말이 없는 그 사람입니다.


한참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만화가 생각이 문득문득 납니다. 그 만화가 만화는 이미 전설 속에만 있을 만큼 흘러간 세월이건만. 그 참에 만화가 박재동 씨의 ‘만화! 내 사랑’에서 그 역시 방영진 화백을 좋아하는 소년 같은 남자이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만화가 전화번호를 알았습니다.

소년의 전화를 받은 만화가는 반가워합니다. 더 불편해진 만화가를 누님 역시 홀로 살며 수발들고 있다고 합니다. 사는 재미로 소주를 벗 삼았다네요. 그해 설에 양주 한 병 보내드리니 만화가는 ‘ 잘 먹겠네.’ 하며 자작곡 하나와 전화 걸어왔지요.  

직장에서 부서장으로 일하고 있는 소년에게 바쁜 오후 시간입니다. 전화기로 만화 스승의 기타 연주를 듣습니다. 왠지 쓸쓸한 여운이 감돕니다.



 얼마 뒤 만화가는 연하장에 ‘근하신년’이라는 글씨와 만화 주인공들을 그려서 소년에게 보내줍니다. 



명절 연휴 끝나고서 전화가 왔는데 나이 들어 보이는 부인 목소리입니다.

“영진이 누난데요. 선물 받을 사람이 멀리 갔습니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소년이 기억하는 창백한 얼굴, 목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털, 지팡이를 의지해 걷던 20대 젊은 모습인데 한 줌 재로 화장터 

앞산에 뿌려졌다니 찾아뵐 무덤조차 없습니다.

전화 걸어 준 만화가의 누님도 그 뒤 바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책장을 펼치다가 나뭇잎처럼 떨어진 근하신년 카드를 집습니다.

어디선가 낡은 집 담 너머 ‘노란 셔츠 입은 사나이’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만화가 방영진  소개


1939년 서울 종로 출생. 제화점을 하던 집안의 아홉남매 중 여섯 째로 태어났다. 학창시절(1952~57년) 중학생 시절 김용환, 김성환의 작품을 보며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1학년때 평생의 지병인 류머티스 관절염이 발병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밴드부원으로 활동했다. 이 시절 나중에 만화가로 같이 활동하게 되는 노석규, 이우헌을 만나 오랫동안 교류한다. 1958년 당대 이름높은 만화가인 신동헌이 연 만화연구소에서 1년간 만화를 배웠다. 신능파(넬슨 신), 이우헌, 이재학, 황정희 등과 함께 배웠다. '칠천국'에 탐정만화 '오복이' 발표. 1959년 '투명인간' 발표. '새벗', '칠천국' 등에 연재. 1960~62년 추리만화 '명탐정 약동이' 시리즈로 큰 인기를 끌었다. '약동이와 거미단', '약동이와 검독수리', '탐정일기' 등 발표. 1962~64년 '약동이와 영팔이', '만세' 등 발표. '약동이와 영팔이'는 네명의 시골학생들이 서울에 올라와 고학을 하면서도 진정한 우정을 나누며 성장하는 학생만화로, 종래에 없던 사실적 표현과 더불어 참을 수 없는 웃음과 감동 스토리를 주며 전 국의 만화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방영진 작가의 병세는 더욱 악화됐다. 거동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물론 만화를 그리기 위해선 몸을 어딘가에 지탱시 켜야 할 정도였다. 작가는 1964년 2월, 2부 20권을 낸 후 절필하고 말았다. 1970년대 월간 '여학생'지에 학생들이 주인공인 중반 '미니 행진곡'을 시작하여 12회를 연재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다시 절필했다. 절필이후 '진영방'이라는 이름으로 음악 활동. 어린이 창작동요 작곡. 1997년 향년 58세를 일기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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