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종원 Jun 06. 2020

2020 현충원 어머니

저희 가슴에 계십니다





올해 국립 서울 현충원은 입장 금지. 



오늘은 현충일입니다. 올해는 현충원 출입이 제한되었습니다. 다른 해에는 해마다 
서울 현충원 친구를 찾아 나섭니다. 
그들은 여름 더위 겨울 추위를 맨몸으로 겪으면서 또 한 해를 보냈겠군요. 
그들에게는 고독한 일상이 하루하루 친구였다가 현충일이면 친구 몇몇이 계절처럼 그들을 찾아옵니다.







이희령 대령 어머님


강종구 대위 어머님




학훈8기 회보에 올라 있는 6월 현충원의 어머니(2011년)



두 사람은 ROTC 8기  1970년에 소위로 함께 임관했습니다.






동작동 국립묘지 29 묘역 묘비 번호 3240번은 이 희령 대령 주소입니다. 



현충원에서 합장묘에 배위 누구 하며 군인 남편과 부인 이름이 나란한 묘비를 드물게 볼 수 있답니다. 



더구나 
아내는 배위의 위치에 있고, 아들딸 이름도 돌판에 새겨져 엄마 아빠와 함께 있습니다. 이런 묘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 해, 1983년. 화학 장교였던 이 대령이 미국 군사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던 9월 1일. 함께 미국 생활을 했던 가족 모두 KAL기 추락으로 외로운 넋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녔던 아이들 귀현 성준이 남매. 
한여름 개울가 유년의 세월 속에서 우리 아이들과도 함께 놀면서 아빠와 부르던 노래가 있었으니.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선화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사고 후 나중에 도착한 이 대령 가족 이삿짐 가운데 속옷에 묻은 몇 가닥 머리카락이 와서야 비로소 죽은 자 대접받아 여기 함께 묻혔습니다. 
어머니는 그때서야 묘지를 지키며 목 놓으셨습니다. 
현충일마다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듯 아들 친구들을 기다렸습니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를 넘겼나요. 어머니 역시 봄날의 꽃 지듯 가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셨다면 자식 친구들을 반갑게 맞이하던 일이 방금인 듯하건만 어머니는 당신 자식을 가슴에 묻으셨으니 어머니, 여기 계십니까. 
어디 친구만 묻혔습니까. 친구와 함께하였던 청춘이 묻혀있습니다. 이제 쓸쓸한 묘지의 모습도 또한 그렇습니다. 
들고 간 꽃다발을 놓고 절을 하고 잠깐 묵념을 합니다. 




이희령 작은 아버님 가족


어느 어르신이 내게 다가옵니다. 
"희령이를 아십니까?" 
어른이 물으시기에 친구라고 답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드리는 인사였고 
고맙소. 희령의  친구분 
작은 아버님의 진심이십니다.





작은 아버님 내외분


동작동 국립묘지 끝자락 55구역 묘비 번호 2731에는 강종구 대위가 있습니다. 강 대위는 1977년 6월 22일에 순직하였고 부모님께서 계십니다. 강 대위는 총각으로 세상에 남긴 혈육 하나 없습니다. 해마다 강 대위 어머니께서는 아들을 기다리시듯 아들 친구들을 기다리십니다. 해마다 오는 친구 이경제와 조중식이 와 있습니다. 


2007년


현충일에 묘지 찾기를 20여 년 하다 보니 그 세월 따라 정정하셨던 두 분 모습이 점점 힘들어 보이십니다. 
“ 아이고 또 와주었네. 고마워라 “ 
반기시는 어머님을  가슴에 안았습니다


이 시절에 아버님께서는 지금 아들 연배이셨지요.



2009년



아버님께 큰 절을 올립니다. 강대위 아우를 품에 안았습니다.  강 대위의 누이를 품에 안았습니다. 
강 대위 어머니께서는 먹을 것을 챙겨내시며 우리가 달게 먹으면 자식이 먹는 듯 반가워하십니다. 부모님께서 묘지를 지켜주시는 날들이 영원할 리 없습니다. 
해마다 강 대위 묘지를 찾아갈 때마다 약해지신 부모님을 뵈면 늘 조심스럽고 세월이 허망합니다.



어머님을 안고, 아버님을 안고


2010년. 부모님도 찾아오는 아들 친구 들도 늙어간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 에고. 흰머리 늘고 마음고생, 세상 고생 많은가 봐.” 
하시면서 당신 자식 생각에 목메시며 우리 또한 그러합니다. 
'어머니!' 
하며 잡아보던 어머니 손 힘이 올해는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 어머니, 이  꽃다발 받으세요. 종구가 어머니께 드리는 꽃입니다. 그리 아세요. " 
꽃다발을 안으시니 어머니는 소녀 같아지십니다.




2011년


2012년






누구나 떠나는 길에 아들은 한 발 먼저 가서 부모님을 기다립니다

우리 친구 중 하나는 강 대위 누이와 낭만적인  이야기가 있어서 해마다 만나면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한바탕 웃고 올해도 웃습니다. 
"종구가 말하더군. 예쁜 누이가 있다면서..." 
이번에도 그 이야기가 꼬리 물고 이어지면, 잠깐 웃고  슬픔도 잠깐 잊힙니다. 
어머니는 활짝 웃으시려고 현충일 1년을 기다리셨지요. 
어머니 마음을 우리 아들들은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저희는 또 만날 기약을 하고 갑니다. 
품에 다시 안기신 어머니, 저희는 당신의 아들들입니다.   
가슴에 품으면 향기 나는 어머님. 가슴에 안으면 가벼워지신 아버님. 





2015년. 아버님 어머니 어찌 이리 늙으셨나요. 이후로 두 분을 현충원에서 뵙지를 못했다. 어머니께서는 집에 계시면서 아들 있는 묘지로 마음을 늘 보내시더니...



돌아보고 돌아봅니다. 
다시 세월이 갑니다. 10년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2020년 현충일입니다. 아버님 어머님께서 잘 계시는 지요.  
아드님 있는 곳에서 함께 함께요. 

https://www.youtube.com/watch?v=QJufPO9CfAA&feature=youtu.be

작가의 이전글 겨울나비. 14 사무실 하이에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