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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May 29. 2020

겨울나비. 8 슬리퍼

누군가 한 사람




오늘 1차 퇴출자가 회사에 모인다. 퇴직금 지급 날이다. 내 부서 재건축사업부 J 과장이 나왔다. 총무부에서 사장 면담이 있다기에 시간을 맞춰서 명퇴자들이 사장을 만났다. 사장이라고 할 말이 따로 있겠는가? 

"내가 무슨 원수를 졌겠느냐? 여러분의 희생이 회사의 회복에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며, 지금 나가는 사람이 나중에 회사가 불가피한 곤경(부도?)에 그만두는 사람들보다는 행운일 수도 있다." 

사표를  내라 해놓고는 윗사람은 녹음테이프 돌리듯 같은 소리다.  하긴 무슨 뾰족한 말이 있겠는가? 나가는 몇몇은 협력업체로 바로 취직이 되었다. 전관예우겠지. 

우리 부서는 재건축 조합을 상대하니 그런 꿈같은 현실이 있을 리가 없다. 그냥 한순간에 거리에 나앉는다. 학교 다니는 두 애의 뒷바라지며 기도원에 다니며 수양을 하여야 하는 병든 아내를 거느린  우리 부서 퇴출 과장은 어디로 가야 하나. 

"오늘은 점심 식사하고 다음에 송별회를 하자고... " 

부장이 말하고 듣고 있던 아직은 현직 C 과장도 나를 보는지 H 대리를 보는지 흘러가는 눈빛을 하면서

 “그래요.  송별 주는  무슨. 다 나갈 판에... "

떠나는 과장이 짐을 싼다.  행여나 하고 짐 싸기를 미루었으나 이제 더 기댈 언덕이 없으니 싸는 보따리였다. 책 몇 권, 부동산 정보 복사물 여럿, 책상 밑에 여름 동무였던 선풍기, 슬리퍼.

과장이 떠난다. 사무실을 지나서 배웅하는 이들은 우리 부서의 직원들뿐. 엘리베이터까지 따라간다. 

"부장님,  나오실 것 없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그의 목소리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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