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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Jul 15. 2020

겨울나비. 31 파타야의 밤

끓는 기름에 데면서  열심히 살아온 어느 치맥집 여주인

동네 상점가에서 그중 내가 깜박 잊었던 치킨 호프집 파타야가 보인다.

바로 그 집이지. 아직도 있구나. 요즘 힘들다 하는데 아직도 있구나.

그이가 있을까.

한때 그 집은 평범한 이름이었다. 상호가 '꼬꼬 집'이었던가. 그 통닭집에서 나는 몇 년 전 한 동네 동료끼리 퇴근길에 모여 맥주를 마시고 거나하게 취한 적이 가끔 있었다.

우리는 '꼬꼬 집'에서 통닭을 먹지 않고 골뱅이무침이나, 번데기를 안주로 삼았다. 세 사람 모두 닭고기를 먹지 않는 식성이었다.

그러다가 저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그 가게에 갈 일이 없었다. 그런데 다시 언제부터인가. 그 집의 이름이 '꼬꼬 집'에서 '파타야'로 바뀌고 주인도 바뀌었다.

그 집 앞을 지나면서 '파타야'가 무슨 뜻일까. 태국의 '파타야' 해변을 가 본 뒤에는 그렇게 골똘하게 생각할 이유마저 없어졌다. 아마도 가겟집 주인은 파타야에 대한 추억이든지 다른 따뜻한 감정이 있었으리.

어느 날 '파타야' 앞에서 '파타야' 새 주인을 만났다. 그 주인은 내가 아는 여인이었다. 그는 후배 집에서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여인은 후배의 제수씨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제수씨가 내가 사는 동네까지 와서 통닭집을 할 줄은 아주 뜻밖이었다. 그럴 수밖에. 분당에서 아파트 건설 바람이 겁나게 불던 때, 후배의 동생은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는 소장으로서 일거리 많아 깃발을 날리고 있었다. 여유 있게 산다고 들었다. 그 사람이 여유가 있고 없고 간에 내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 내 위치가 재건축, 재개발 설계 사무실을 회사 내 설계 부서에 추천할 위치로 으쓱으쓱 하던 참이었다. 그 뒤 건설 경기가 무너져 내렸다. 설계사무실도 덩달았다.

그 설계사무실 소장 부인이 통닭집 주인이 되어서 우리와 가게 앞에서 마주쳤다. 이제는 통닭집을 하던, 붕어빵 장사하던 남의 눈에 부끄러운 시절은 물론 아니다. 나는 안면이 있다는 것만으로 뭔가를 해주고 싶어서 내 딴에는 손에 익은 그림으로 쉴 실버스타인 그림을 베껴 몇 컷을 그려 비닐 코팅을 해서 가게에 가져다주었다.

나중에 가게에 가보니 내 그림이 벽 여기저기에 무슨 화가 그림처럼 붙여져 있었다. 아마도 통닭집 분위기에 그림이 맞았거나 다른 그림을 돈 주고 살 여유가 없었는지 모른다.

그 집에 그림을 준 것으로 끝날 수는 없었다. 통닭을 자주 사 먹어야 하는데 내가 닭고기를 먹지 않으니 그 일이 없었다.

우리 집에서 빤히 보이는 파타야는 길 건너 아파트의 길가 1층에 있기에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여름밤에는 가게 앞에 파라솔을 치고 손님을 맞이했으며 손님들은 맥주 조끼를 들면서 마치 노변 카페에 온 듯 기분 좋은 표정들이었고, 좌석에 손님들이 비어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

우리 내외는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마치 죄지은 양 걸음을 서둘러 갔다. 통닭을 못 먹는 것도 죄라면 죄가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작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후배의 부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었다. 파타야를 남에게 넘길 수도 있으며 그렇다고 내게 보고를 하고 넘길 리는 없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로 접어들었을 때, 가게 앞에서 우리 내외와 후배 부인과 우연히 마주쳤다. 부인에게 일이 있었다.

대단한 장마에 바람도 몹시 심하던 날이 있었다. 그날도 통닭을 튀기다가 심하게 부는 바람에 기름이 끓고 있는 솥을 뒤집혀 기름이 후배 부인 몸에 쏟아졌다고 했다. 그 집은 통닭을 튀기는 솥을 가게 밖에 천막을 치고 끓이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바람으로 일을 당하게 되었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얼굴은 다치지 않고 가슴과 팔에 화상을 입어서 치료를 중이라고 했다.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우리는 그 사실을 그렇게 늦게 서야 알았다. 아내는 비가 몹시 오던 날에 구급차가 상가 건물 앞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후배의 불행을 겪었던 사실과 연관을 시키며 안타까워했다.

올해도 밤이면 밤마다 파타야의 가게 앞의 파라솔에 불이 켜져 있다.

사람들이 늘 북적대니 기쁘다. 가을바람이 불어서 사람들은 파라솔에 앉기는 서늘하다. 이제 파타야는 파라솔에 비닐을 두르고 밤을 맞이한다.

그 불빛은 치명적인 위험을 이겨낸 파타야 여주인의 강한 의지처럼 밝게 빛나고 있다.

"내일은 통닭이라도 삽시다. 아이들하고 함께 가기 어려우니, 사놓았다가 먹이면 아내는 우리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파타야의 불빛을 보며 내게 말한다.


그 뒤로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그때 파타야가 큰 가게로 이사 왔다.

벌써 세월이 한참 흘렀구나.


 아직도 밤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 생활 속에서 행복을 줍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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