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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Jul 17. 2020

겨울나비. 32 떡볶이집

손 큰 여인은 입소문까지 얻어 동네 맛집으로 등극

우리 가족은 길가 아파트 3층에 살았다. 떡볶이 포장마차 불빛이 깜박거리면 나는 사러 가고, 불빛이 안 보이면 섭섭했다.

상가 건물과 와 단독 빌딩 사이 오솔길이 있다. 그 길에는 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고 작은 공원에는 한낮에 비둘기가 논다.

오솔길 복판에 나무와 나무 사이에 노점상이 떡볶이를 판다. 팔면서도 주인이 정한 기준이 있는 듯 비가 몹시 오면 안 팔고 심하게 추운 날은 안 팔고 넘으면 안 판다. 단골은 초등학교에서 대학생까지의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집 주방에서 밖을 내다보던 딸아이가 "나도 먹고 싶어~"하면 내가 떡볶이를 사러 가기도 한다.

젊은 아낙이 주인이다. 웃으려 애를 쓰지 않아도 미소가 얼굴에 감도는 여인인데 남정네는 곁에 없으니 미혼인지 기혼인지는 모르겠다.

한 끼를 해결할 만큼 손이 크고 푸짐하여 작은 천막 속은 손님들로 가득하다. 손 큰 아줌마가 추억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하였다.

밤에 출출하여 아니 보이면 공연히 허전하고 걱정도 했다. 그렇다고 그 아낙과 내가 사사로운 말을 나눈 적이 없다. 속 사정을 들은 일도 없으며, 가정사가 어떤지 물어본 일 또한 없다. 거리 노점상에 어쩌다 들르는 손님일 따름이다.

어느 날 그 노점은 천막에 먼지가 가득한 채 문이 닫혀있다. 나는 노점상 여인이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던 따뜻한 정을 생각하며 공연히 섭섭했다. 아내는 웃으면서

" 그 집 돈 벌었다고…. 노점상에서 아파트 상가로 옮긴 걸 자기는 몰라?"

그러고 보니 노점의 포장마차를 감싼 비닐 천막에 너풀대던 백지 한 장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다른 날 지나가다 백지에 적힌 사연을 보았다. 장소를 근처 아파트 단지 내 상가로 옮겼으니 많이 이용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마치 내가 장사를 하다가 춘풍추우와 북풍한설을 피한 듯 기분이 좋았다. 마침 상가 안에 내가 가끔 들르는 문방구가 있다. 아줌마가 내게 말한다.

" 특별한 떡볶이집이에요. '진이네 떡볶이'라는 홈페이지가 있어서 회원 관리까지 한 데서 동네 상인들이 재미있어하지요. 자기 나름대로 떡볶이 철학을 가지고 있다나요. 내 집을 이용하려면 내가 관리를 철저하게 하겠다는 것이니 특별난 사람이지요."

문방구 주인이 놀랄 정도면 나이 차이에서 오는 충격일 수도 있고, 사고 차이에서 오는 충격일 수도 있다. 떡볶이라는 돈 천 원짜리를 팔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장하다.

문을 열었다. 가래떡을 토막 내는 일을 두 아낙이 하고 있다.

" 안녕하세요. 길에 있다가 여기에 가게를 차려 너무 반가워서…. 여기 홈페이지도 있다면서요. 주소 한 번 압시다."

명함 한 장 얻었다.

야후나 다음에 카페를 연 것이 아닌 어엿하게 자기 사이트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여야 힘든 시절을 살아갈 수 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면서 우리 자신은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여기 동네 길바닥에서 힘든 세월을 보내고 상가에 어엿하게 자리 잡았으니 대단하다. 나는 그 젊음이 부럽다. 젊은 마음이 아름답다.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신선한 자극을 주니 삶의 스승은 이렇게 이 젊은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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