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양의 마음 - 설재인
동네 시장 생선 가게 뒤에 누렁이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집에서 강아지를 못 키우게 해서 학교가 끝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져줬었다. 앉으면 내 명치에 코가 닿는 큰 개였다.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예뻐해 주니 나를 보면 귀를 뒤로 활짝 젖히고 펄쩍펄쩍 뛰곤 했다. 살살 다가가서 손을 내밀면 내 손바닥에 턱을 올리고 푹 주저앉았다. 어린아이에게 대형견의 머리는 꽤 무거웠다. 샌들의 발가락이 삐져나올 정도로 휘청이곤 했으니까.
내가 가방을 챙겨 집으로 가는 모양이 보이면 낑낑거리며 불안해했다. 아스팔트 바닥을 타닥거리며 큰 발을 굴려댔다. 어떡해. 나는 집에 가야 되는걸. 돌아서서 발걸음을 떼면 누렁이가 묶인 쇠사슬이 요동쳤다. 누렁이의 발소리는 묻히고, 쇠사슬이 바닥에 내려치는 소리가 커졌다. 내가 골목을 돌아 모습이 사라질 때쯤에는 서럽게 울었다. 돌아오라고. 5분이고 10분이고 계속 외쳐댔다.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들.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서로가 바라는 걸 가지고 있다. 중학생인 유주와 상미. 그리고 어른 진영.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속도가 나지 않는다. 삶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말들이 속을 파고들었다.
"아뇨. 아줌마가 미안할 게 아니고. 어른이 되어도 좋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끔찍해요. 저는 어른이 되면 괜찮아질까 했어요. 저도 어른이 되면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될 줄 알았어요. 저는 엄마 되게 싫어해요. 아빠도 되게 싫어해요. 그러면 안 된다고 사람들이 욕하잖아요. 근데 저는 좋아하는 마음이 안 생겨요. 그래서 그 생각밖에 안 했어요. 어떻게든 최대한 버텨서 어른이 되면 괜찮아지나 봐. 어른이 되면 화해하게 되나 봐. 아니면 내가 왜 그랬는지 반성하게 되거나.....
그런데 그게 아니었군요."
나라면 뭐라고 대답해 줬을까. 어른이 되면 용서보다 손절이 먼저야. 부모가 절대적인 건 아니야. 최대한 빨리 도망쳐. 이런 말들? 그게 아이들에게 답이 됐을까. 이런 대화의 딜레마는 선택의 무게가 나에게도 돌아오다는 것이다. 너의 선택이 옳았건, 옳지 않았건 나도 거기에 손을 얻은 셈이다. 그러니 다양한 선택지를 알려주고 말해줘야 한다. 과거는 뒤로 버리고 나아가면 된다고.
누군가 나 대신 고민하고 나 대신 대답해 주었으면. 진영은 속으로 빌었다. 정답을 주었으면.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다.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자신보다 더 큰 어른에게. 살아오면서 한 번도 가지지 못했던 대상에게.
나도 고민이 길었다. 나보다 어른인 사람이 선택해 줬으면. 내 결정이 틀린 게 아니라고 말해줬으면. 결과는 내가 감당할 테니 어서 판단해 달라고. 그래야 내가 네 말을 다리 삼아 도망갈 수 있어.
그리고 늦지 않게 그런 어른을 만났다. 운이 좋았다. 어떻게 방향을 잡을지 알려줬고, 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도 깨닫게 해 줬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냐고 묻는다면.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진영처럼 옆에서 기다려줄 수는 있다.
아직 소설의 끝은 보지 못했다. 읽는데 시간이 더 걸릴 거다. 남은 페이지 안에서 진영이 어떤 선택을 할지 무섭다. 아이들의 곁에 남을까, 떠나갈까, 새로운 길이 열릴까.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어른으로 남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