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덴샤 기업 PR 캠페인 (2020)
電気よ、動詞になれ。
전기여, 동사가 돼라.
명사(名詞)인 무언가를 동사(動詞)라고 칭하는 표현을 처음 본 것은 광고계에 입문한 20세기 말, <세계 캐치프레이즈선>이라는 책에서였다. 세계의 유명 카피와 슬로건을 모은 책이었다.
<유통, 서비스, 기타> 카테고리에 한큐백화점의 카피로 소개된 짧은 한 줄이 내 망막에 맺힌 후 시신경을 거쳐 대뇌에 20여 년 동안 각인이 되어 있었으니 그 카피는 바로,
아, 카피를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사람을 품사로 표현하다니. 나중에 이 카피가 실려 있는 원래 광고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찾을 수는 없었다. 사람을 동사로 표현한 비주얼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원작은 못 찾았지만, 이 카피는 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한참 뒤 한국의 광고에 추상명사를 동사로 표현한 카피가 등장한다.
2005년에 온에어 된 대한적십자사의 TV광고의 슬로건이 '사랑은 동사다'였다. 한큐백화점의 '여성은 동사'라는 슬로건 속 '동사'는 '변화한다', '능동적이다' 등의 의미를 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광고 속 '동사'는 '실천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좋은 의미를 담은 카피였지만, TV광고 전문 사이트인 TVCF.co.kr에 남겨진 댓글을 보면 이 뜻을 정확히 헤아리지 못한 시청자도 많았던 것 같다. 꽤 많은 댓글이 도대체 '사랑은 동사다'가 무슨 뜻이냐고 묻고 있다. 좋은 카피를 많은 대중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대중의 잘못인가, 카피라이터의 잘못인가.
아무튼, 이후로 ‘OO은 동사’라는 문장을 광고나 잡문에서 자주 보게 되면서, ‘OO은 동사’라는 표현이 흔해지면서 예전만큼 멋있게 보이지는 않게 됐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명사를 동사로 부르려는 인상적인 캠페인 슬로건을 만나게 된다. 창사 120년을 훌쩍 넘은 일본의 전기기기 전문 기업 메이덴샤(明電舎)가 2020년 전개한 기업 PR 캠페인의 문구이다.
電気よ、動詞になれ。
전기여, 동사가 돼라
TV 광고 속에는 시골에서 도시로 향한 소녀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아마도 진학이나 취업의 꿈을 안고 도시에 왔을 것이다. 그러나 바쁘고 차가운 도시는 소녀를 반겨주지 않는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소녀의 방에 불이 켜진다. 그녀의 얼굴을 밝게 비추며 내레이션이 흐른다.
화면이 바뀌면 메이덴샤의 작업현장과 직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위로 자막이 생겨난다.
이 캠페인의 신문 광고에는 더 많은 동사들이 등장한다. 비추다. 전송하다. 젓다. 찍다. 표시하다, 울리다, 힘이 되다, 일어서다. 보여주다 등 많은 단어들로 전기가 우리 삶에서 펼치는 수많은 일들을 소개한다. 이를테면 어느 아이가 태어난 산부인과의 한 풍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광고 속의 전기는더 이상 '양과 음의 두 부호를 가진 전하가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광고를 통해서 전기는 그렇게 존재하는 상태가 아니라, 그로 인해 할 수 있는 수백, 수천, 수만 가지의 일들과 가능성이 된다.
이 카피가 ‘전기는 동사다’에 머물렀다면 그저 그런 광고가 됐을 것이다. 단순한 정의를 명령형으로 바꾸면서 수많은 동사로 의미를 확장했다. 그렇기에 명사를 동사로 바꿔 부르는 시도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가 됐다. 누군가 여러번 시도했던 방식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각도를 찾아내면 인상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이 캠페인의 신문 광고는 2020년 제69회 일경광고상(日経広告賞) <전기,통신,IT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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