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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영 Dec 11. 2022

아무도 박수치지 못한 유치원 졸업 발표

JR "そうだ. 京都,行こう" 인쇄광고(1994)

아이들의 마지막 노래가 끝났지만 박수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10년 전, 아들의 유치원 졸업식 때의 일이다. 졸업식을 겸한 발표회 자리. 몇 주전부터 열심히 연습을 해온 꼬마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무대에 섰다. 2-3명이 함께 하는 노래, 5-6명이 함께 하는 율동 등 귀여운 아이들의 무대가 끝날 때마다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모두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마지막 무대, 이 날 행사의 클라이맥스인 합창이 끝나도 박수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자리에 모인 부모들의 손들이 모두 핸드폰과 캠코더를 들고 공중을 향해 뻗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명씩 무대에 오른 발표에서는, 공연하지 않는 아이들의 부모가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이 전까지는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모든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촬영기기를 들고 있었고, 발표장 안에는 박수를 칠 손이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가 당황스러워했다. 어수선한 분위기는 사회자 선생님의 진행 멘트로 금방 수습이 되었지만 원장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던 거지?"


10년 전의 그 영상,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굳이 찾는다면 외장하드 어딘가를 뒤져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0년 동안 나도, 아내도, 아이도 찾아본 적이 없다. 앞으로? 아마도...


다시는 찾지 않을 영상을 찍기 위해, 긴장된 표정으로 노래를 하던 아이에게 카메라 렌즈 대신 아빠의 눈을 맞춰주지 못한 미안함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마지막 노래가 끝난 후 폭포 같은 박수를 보내주지 못한 속상함도.


사진은 추억이 된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도 한다. 맞다. 한 장의 사진을 통해 20년전 30년전, 때론 훨씬 더 오래 전을 기억하며 웃음짓고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된다. 사진은 힘이 있다. 사진은 남겨져야 한다. 그러나 사진만으로 기록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사진이 아니라 내 눈에, 피부에, 가슴에 새겨야 하는 것들도 있다. 그것을 적절히 구별해야 함을 그제서야 느끼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사진을 적게 찍는다. 당연히 추억을 위해 남겨야 할 사진을 찍기는 하지만 모든 순간을 멋지게 남기고 싶은 강박에서는 조금 벗어난 것 같다. 아이와 함께 한 고마운 순간, 새로운 곳에 가서 느끼는 놀라움과 감동을 가급적 내 스마트폰이나 카메라 대신 내 눈에, 내 손에 남기려고 하는 편이다.  


10년 전의 유치원 졸업식 장면을 상기시켜준 것은 30년 전 세상에 나온 광고 한편이다.


(출처: https://souda-kyoto.jp/_assets/_img/campaign/1994_07.jpg)



"그래, 교토에 가자(そうだ 京都、行こう)는 JR이 1993년부터 전개해온 캠페인이다. 교토의 다양한 명소의 아름다운 모습과 담백한 카피를 영상과 인쇄광고에 담아,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광고 시리즈의 전설이다. 30년째 이어지고 있는 광고 시리즈라니!


교토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담은 수많은 광고물 하나하나가  압권이지만, 내 마음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광고는 1994년 겨울에 나온 바로 이 작품이다. 무려 600여 년 전에 지어진 금각사(金閣寺)의 절경 위에 짧은 세줄의 카피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シャッター押すのをやめて
じっと、まぶたに
 焼きつけています。


셔터 누르는 것을 멈추고

지긋이 눈에

새기고 있습니다.



물에 비친 이미지와 데칼코마니처럼 쌍을 이루고 있는 자연과 절의 외관. 더 할 것도 뺄 것도 없어 보이는 완벽한 풍경을 보면서,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하지만, 셔터를 누르는 것을 잠시 멈추고, 이 아름다운 광경을 충분히 마음속에 느끼며 눈에  먼저 새기고 있다는 카피를 건넨다. 눈과 마음에 새기고 나서 셔터를 눌러도 늦지 않으니까.  


자신의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로 직접 영상을 남기는 것은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것에 연연하다가 놓치는 것들이 생기는 건 아쉬운 일이다. 그날 나뭇잎에 부서지며 얼굴에 닿던 햇살의 포근한 느낌, 나를 통과해 가던 서늘한 바람의 질감. 그 풍경 앞에서 있을 때 멀리서 울리던 새소리... 이것은 렌즈 말고 내 몸으로 느껴야 하는 것들이다.


SNS에 인증하기 위해서 셔터 누르기 급급해하며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것들이다. 멋진 사진을 간직하고 싶은 차원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대체로, 웬만한 명소와 풍경의 사진은 남이 찍어 놓은 게 훨씬 더 낫다.


"그래 , 교토에 가자" 캠페인은 이 광고 말고도 아름다운 작품들로 인정받아 왔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사랑받는 30년의 캠페인을 이어왔다? 이것은 기적 같은 사례이다. 5년 전엔 도쿄에서 캠페인 25주년 기념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 링크를 통해 30년간의 쌓인 주옥같은 캠페인 내용을 보셔도 좋겠다. (그래, 교토에 가자 캠페인 이미지 갤러리 : https://souda-kyoto.jp/campaign/index.html )




기회가 되면, 10년 전 박수를 못 쳐준 것에 대한 보상으로 교토로 가족여행을 가보고 싶다. 물론, 아빠와 여행하는 게 보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 모습들을 우리 눈에 새겨보지 않을래?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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