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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영 Mar 09. 2023

그 시절 아빠들은 사진 속에 없다

캐논 신문광고 (1983)

출처: SK기업PR TV광고(2009)


오래된 사진들이 차례로 화면에 나온다. 평범한 가족들을 찍은 빛바랜 사진들. 그냥 옛날 사진들이 나오나 보다 했는데, 뜻밖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외모에 자신이 없거나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서

이 땅의 아버지들이

사진 속에 없는 건 아니다


가족을 위해

늘 사진 밖에 계셨던 아버지


아버지, 당신이 행복입니다



내레이션을 들으며 보니, 정말 광고 속 사진 안에는 엄마와 아이들 뿐이다. 2009년에 온에어된 SK그룹의 기업 PR <당신이 행복입니다> 캠페인 중 하나이다. 예전의 가족사진에는 아빠가 없는 경우가 많았던 것에서 착안한 광고다. 아버지들이 못 생겼거나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사진기 건너편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발견해 감동을 준다.


동영상 보기:

출처: tvcf.co.kr




누구나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무게가 있는 필름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야 했다.  카메라가 비교적 고가의 물건이기도 했고, 사진을 잘 찍으려면 어느 정도의 숙달도 필요했다. 그래서 가족끼리 외출을 하면 꼭 아버지가 사진을 찍었고, 그래서 많은 사진들 안에는 엄마와 아이들만 있었다. 트라이포드에 올려 타이머로 세팅을 하거나, 지나가는 행인에게 부탁을 해서 아버지가 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었지만, 역시 압도적으로 많은 사진들이 엄마와 아이들뿐이었다.


우리 집도 그랬다. 가족 나들이에 언제나 오래된 은색 라이카 카메라가 따라다녔다. 카메라는 늘 아버지의 목에 걸려 있거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 시절 우리 집 사진에도 아버지는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진 속에는 주로 아버지를 뺀 가족들의 모습이 있었다.  


아버지는 따로 사진을 배우지도 않았고, 미술이나 디자인 쪽의 감각이 발달하신 분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 속에는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모습들이 담겨있었다. 아버지는 우리들의 사진을 어떻게 잘 찍으실 수 있었을까.


좋아하는 카피들을 메모한 20년전의 자료를 살펴보다가, 우연히 그 이유를 발견했다.


父親になったら、
写真はうまくなる。

아버지가 되면,
사진은 잘 찍게 된다.



카메라 업체인 캐논이 만든 40년 전의 인쇄광고 카피다. 광고 속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아가와 그 아이를 안고 행복해 하는 엄마의 모습이 담겨있다. 흔한 사진이다. 그런데, 이 카피 한 줄이 얹어지니 보이지 않던 것이 선명해진다. 지금 이 사진을 보고 있는 자리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남자.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의 모습을 뷰파인더에 담고 있는 그 사람의 존재가 광고를 꽉 채운다. 



광고 속에 사진을 잘 찍게 되는 특별한 비법 같은 것은 없다. 어떤 식으로 앵글을 잡는다거나, 적절한 노출값을 설정하거나, 초점을 잘 맞추는 노하우 같은 것이 없다.  그저 아빠가 되면 사진을 잘 찍게 된단다. 이렇게 어이없을 만큼 감동적인 노하우가 있단 말인가.


이 카피는 알려준다. 피사체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좋은 기술은 없다고. 그것이 우리 아버지들이 가진 위대한 사진 노하우였다고.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렌즈 너머의  피사체를 바라보는 것만큼 좋은 원천기술이 있겠는가. 돌이켜보면, 사진 속의 앵글, 노출, 색감 같은 것들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모델의 의상도, 포즈도 촌스러웠다. 하지만, 그 사진 속에 우리들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 기록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옛날 앨범을 꺼내 그 옛날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을 바라본다. 사진 속의 나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엄마의 등에 업혀도 있고 동생들과 놀기도 한다. 그러면서 100일, 돌, 초등학생, 중학생으로 자라고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가 찍어 준 내 사진이 별로 없는 것을 발견한다. 그때부터 나는 가족과 함께 있기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나 보다.  


사진들을 보다가 문득 깨닫는다. 이 사진들은 모두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었음을. 이 각도로 이 앵글로 사각의 프레임 안에 나를 가장 예쁘게 담으려고 하셨겠구나. 더 선명하게, 아름답게 담기 위해 정성껏 조리개를 여닫고, 초점을 맞추셨겠구나. 내가 내 아들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

지금 나는, 45년 전 아버지의 눈으로 45년 전의 나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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