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의 ‘좋은 사람’. 2001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오랫동안 많은 짝사랑 경험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좋아하는 후배에게 ‘고마워, 오빤 너무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으며 몰래 웃고마는 짝사랑남이 주인공이다.
학교 후배를 좋아하는 화자는 그녀의 고민상담도 해주고, 학교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는 ‘그냥 좋은 선배’이다. 그녀와 연인같다고 장난치는 주변 친구들의 말에 밤 지새우며 설레지만, 먼 곳에서 그녀를 바라만 볼 뿐인다. 그녀에게 연인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마음을 모르는 (아마도 알면서 모른척 하고 있는) 그녀가 주인공의 생일날 남자친구를 데려와 인사시켰을 때에도, 남자친구와와 사이가 안 좋아져 슬퍼하고 있을 때에도 화자는 늘 똑같은 태도이다. 그녀 곁에서 축하해주거나 위로해주는 ‘좋은 사람’ 노릇밖에 하지 않는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 파트의 가사가 그의 마음을 아프게 보여준다.
나는 혼자여도 괜찮아
널 볼 수만 있다면 나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
속절없이 가까이서 짝사랑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디테일하게 묘사한 가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 하면서도 동시에 답답해 했다. 그는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면 그나마의 좋은 관계마저 잃어버릴까봐 두려워 하는 것이다. 마음을 밝히면서 생길 수 있는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라는 허울 좋은 말에 만족하고 돌아서는 것이다.
이 노래가 오랫동안 큰 사랑받은 것은 가사에 대한 공감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이런 ‘좋은 사람’이 되어보거나, 주위에서 경험해본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좋은 사람’은 연애상황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나 사회에서도 ‘좋은 사람’은 곧잘 등장한다.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는 것은 기본이고, 다른 사람들을 잘 도와준다. 특히,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기 보다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여기까지는 정말 ‘좋은’ 태도와 품성이다. 문제는, 그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 만족하고 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경우이다.
의견이 충돌하거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에 드러난다. 상대방과 갈등을 겪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다. 관계상의 어려움이 있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관철해 얻어내는 편익(benefit)보다, 갈등을 피해서 얻는 심리적 안정과 평안의 편익이 더 크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흔히 ‘좋은 게 좋은 것’이란 말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포장이 ‘좋은 사람’인 것이다.
그 포장에 대해 경고하고, 다른 생각의 각도를 알려주는 광고카피가 있다.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사업부인 토요타 가주 레이싱(Toyota Gazoo Racing)의 잡지광고의 문구이다. 이 광고는 모터스포츠 트랙에 남겨진 많은 레이싱카들의 흔적을 보여준다. 불빛의 라인으로 사진에 남겨진 자취와 바닥에 타이어와 마찰을 일으켜 거칠게 묻어있는 검은 자국들이다. 이 강렬한 이미지 위에 네 줄의 짧은 카피가 배치되어 있다.
摩擦を恐れるな。 摩擦は熱になる。 その熱だけが 情熱になる。
마찰을 두려워하지 마라. 마찰은 열이 된다. 그 열만이 열정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마찰을 두려워한다. 나도 그렇다. 마찰의 열이 뜨겁고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광고는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그 열을 좋은 방향으로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열이 열정을 만드는 것이다. 열정을 품지 않으면 힘차게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더 도전할 수도 더 성취할 수도 없다. 이렇게 다른 앵글로 보면 마찰은 상처의 이유가 아니라 전진의 원동력이 된다.
광고는 과거의 나에게 묻는다. 더 좋은 결과가 아니라 나에게 편안한 상태를 위해 ‘좋은 사람’이라는 포장으로 타협한 적은 없었는지. 학생회와 학보사 활동을 했던 학생시절에도, 늘 전략과 아이디어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광고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크고 작은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같은 것이었다. 열띤 토론과 감정적인 부딪힘이 상수로 존재하는 곳에서 그저 갈등을 피하는 선택을 한 적은 없었는지 돌이켜 보게 된다. 특히, 시간이 쌓이면서 ‘좋은 사람’이란 방패막과 ‘능숙해진 사회생활’의 결과로 만들어진 안정과 평화는 아니었는지 경계하면서 돌아 본다.
토요타 가주 레이싱 광고의 비주얼과 같은 아스팔트의 흔적이 내 주변에 보이지 않는다면 아마 둘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마찰을 두려워해서 과감한 드리프팅을 회피하거나, 마찰을 하려고 해도 타이어가 닳아있거나. 어느 경우든 진짜 ‘좋은 사람’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광고는 현재의 나에게도 묻는다. 지금 나는, 필요한 마찰이라면 기꺼이 감수하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가? 마찰의 재료가 닳아 없어지지 않도록 나의 비전과 실력을 잘 가다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