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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버리KAVORY Oct 19. 2023

57년차 노포의 맛

일단 난 '극호'

호불호가 강한 음식들이 있다.

홍어, 평양냉면, 닭발, 번데기, 청국장, 고수 같은 것들.

호불호가 생기는 이유는 보통 이렇다.

특유의 냄새가 있거나, 육류의 비선호 부위이거나, 육안상 징그럽게 생겼다거나.

이 세 가지 기준에서 벗어난 새로운 호불호의 영역이 바로 평양냉면이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평양냉면은 철저히 마니아의 음식 또는 미식가의 음식으로 구분되었다.

'슴슴한 맛'이라는 키워드로 통한 평양냉면.

슴슴함도 맛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음식이다.

이제는 난이도까지 나누어 입문하기 좋은 평양냉면 전문점이 따로 소개가 되기도 한다.

< 성천 막국수 논현점 >

2022년 성시경의 먹을텐데에서 소개된 '성천 막국수'.

진작에 가보고 싶었고,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영상에서 성시경 씨조차 이건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라고 했기에

망설이고 망설이다 며칠 전에 용기 내어 다녀왔다.


사실 '성천 막국수'는 단순히 떠오른 맛집이 아니라

1966년부터 그 뿌리가 시작된 '노포 맛집'이었다.

'평남 막국수'란 이름으로 시작한 이곳은 1980년에 '성천 막국수'로 이름을 바꾸었고

지금까지 3대째 영업을 해오고 있다.


메뉴는 제육, 물 막국수, 비빔 막국수 딱 3가지.

< 기본 찬으로 제공되는 숙성 무짠지 >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기본찬으로 제공되는

무짠지부터 시작된다.

숙성을 해서 쿰쿰한 무짠지는 그 냄새로

우선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여느 냉면집의 무김치와는 분명 다른 결이다.

무짠지는 그냥 먹지 않고 특제 양념장과

식초, 겨자를 섞어 비벼 먹는다.

막국수와 곁들여도 되고, 제육과 곁들여도 된다.

아니 꼭 곁들여야 한다.



이날 혼자 방문하긴 했지만 미리 알아본 바로 제육의 양이 그리 많이 않다고 하여

물막국수와 함께 제육 한 접시를 주문했다.

< 성천 막국수 메뉴판 >


점심시간이고 혼자 방문했기 때문에 술은 당연히 생각하지 않았다.

제육을 함께 시키면 잘 삶은 제육이 먼저 나온다.

< 성천 막국수의 제육 한 접시 >

제육 첫 점은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고 먹어본다.

정말 잘 삶은 제육이라 느껴지는 것이 부드럽기도 한데 간이 완벽하다.

"아니, 이걸 어떻게 소주 없이 먹어? 반 접시 더 시켜야 하나?"

자연스럽게 손을 들고 소주 한 병을 주문한다.

제육 한 점에 양념에 버무린 무짠지, 소주 한 잔.

1분 간격으로 반복한다.


제육을 반쯤 비웠을 때, 물 막국수가 나왔다.

고기 한 점 없고, 담음새도 투박한 이 막국수.

의심스러웠지만 조심스럽게 국물부터 마셔본다.

잠깐 의심이 짙어진다.

"이게 무슨 맛이지?"란 생각이 스쳐지날 때쯤

동치미 국물 특유의 새콤하고 쿰쿰하지만

달큰한 맛이 계속 입에서 머문다.

"아, 이거 진짜 무서운 음식이네..."

이때부턴 패턴이 다시 바뀐다.

제육 위에 무짠지를 올려서 입에 넣고,

3번 정도 씹은 뒤 소주를 밀어 넣는다.

마저 꼬옥꼬옥 씹으며 입에 남은 제육

알코올이 뒤엉키며 어느새 입가엔 미소만 남는다.

이 때다 싶어 막국수 한 젓갈을 크게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으며 육수를 들이킨다.


다시 반복...


혼자란 사실이 너무 슬펐다.

슬픈 이유는 외로움이 아니었다.

비빔 막국수도 먹어보고 싶은데 더 이상 먹기엔 배가 너무 불러서 슬펐고,

이 행복한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슬펐다.


머지않아 지인들과 함께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이 행복을 최대치로 누릴지 몇 번이고 고민했다.

내 결론은 3-4명의 지인과 함께 오후 1시 30분쯤

늦은 점심으로 방문해서

수육 1인 1 접시에 소주 각 1병을 마시고,

시원한 물 막국수로 마무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2시간 정도 낮잠을 잔다면..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내게는 새로웠던 음식이었다.

평양냉면을 충분히 즐겨본 사람이라면 성천 막국수로 새로운 행복을 찾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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