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못하는 관계

충분히 좋은 엄마

by 구뜨마망



우리가 맺는 수많은 관계들 중
가장 어려운,

사랑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사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 관계는
서로를 고를 수 없었으나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로
이미 깊은 복잡함을 안고 시작된다.

부모자녀 관계는

누구도 고른 적 없다는 점에서

수용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아쉬움,

부러움,
이해받지 못한 마음,
시도조차 못했던 순간들.
괜찮은 척하며 써버린 에너지만큼
쉽게 지치는 나 자신이 못마땅한 마음.

쓰임이 있어야만 칭찬받았던 그때.

그런 감정들이 왜 해결되지 않았을까?





도널드 위니컷의 ‘충분히 좋은 엄마’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았던 시작을

품어주는 말처럼 들린다.

반려동물을 키우기로 결심했을 때
그 동물이 ‘랜덤’으로 정해진다면 어떨까.
귀여운 동물을 기대했는데,
내게 주어진 존재는

만지는 것조차 선뜻 마음이 가지 않고,
보는 것조차 불편하다면
나는 왜 키우기로 했을까

후회가 드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할 수 있다.

양육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여전히 다른 결을 지닐 수 있다는 점에서
양육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는 것.




‘있는 그대로’ 수용받은 경험의 부재는
지금의 나를 쉽게 흔들리게 한다.

다시 말하지만,
‘고른 적 없는 관계’에서
무조건적 수용이 어려운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내가 기대한 만큼 만족했기때문에

수용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다시 한 번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곧 ‘한계에 대한 수용’이며,

삶이 본디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인정하는 것이 어른스러움일지도 모르겠다.


이전 13화감정 숨바꼭질의 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