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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Jan 08. 2021

너무 바쁜 사람은 돈 벌 시간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이라는 책에는 ‘굴튀김 이론’이란 게 나온다. 본인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면 힘들지만 굴튀김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의 내 굴튀김은 카카오톡(이하 ‘카톡’)이다.

 

1. 친구 수 25명

한때 카톡 친구가 2,000명이 넘은 적이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할 때의 이야기다. 핸드폰 주소록에 저장만 하면 자동으로 카톡 친구가 되다 보니 카톡 친구가 2,000명을 넘어 있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침대에 누워 무심코 카톡을 켜고 친구 목록을 훑기 시작했다. 목록 처음부터 아래로 쭉 내리면서 눈에 띄는 프사가 있으면 확대해서 보고 닫고 또 내리다가 또 눈에 띄는 사진은 확대해서 보고 닫고 그런 식이었다. 그렇게 친구 목록에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다 보고 나니 한 시간 반 정도가 훌쩍 지나있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근데 그런 짓을 또 하고, 또 하고, 또 했다. 시작은 무심코였지만 나중에는 굳이 하게 되더라.

 

그 짓을 또 한 어느 저녁, 심하게 현타를 겪고 카톡 친구 목록에 있지만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을 목록에서 제거해 나갔다. 객관적인 기준은 없었다. 그저 연락하지 않는, 그리고 앞으로 연락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은 지워나갔다. 그날 2,000명이 넘던 내 카톡 친구는 100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때부터는 더 줄이기가 쉽지 않았다. 왠지 내일 당장 연락할 거 같았다. 그게 아니어도 내 마음속에 이 사람과는 그래도 좀 친한데?라는 생각에 지우기가 괜히 미안했다. 좀 더 빡빡한 기준을 세웠다.

 

최근 한 달 내에 연락하거나 오지 않았으면 목록에서 지우자.

 

그렇게 정리를 주기적으로 하다 보니 어느덧 카톡 친구가 25명이 됐고 그렇게 유지된 지 몇 년이 지났다. 이제는 더 이상 친구 목록을 훑어보는 짓도 안 한다. 해봤자 거기서 거기고, 웬만하면 친구로 등록이 안 되어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그 25명 중에서도 수개월 동안 연락하지 않은 사람들이 종종 있다.

 

(*) 핸드폰 주소록의 전화번호도 관리한다. 회사 같은 팀원들의 전화번호도 저장하지 않는다. 상시적으로 연락해야 하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는 앞자리나 뒷자리 4자리를 외운다. 종종 연락하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라도 낯익더라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면 받지 않는다. 낯익은 번호는 따로 전화번호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본 후 다시 전화를 건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점점 전화가 더 불편해진다. 용건이 있으면 문자로 먼저 보내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내가 전화를 하는 게 편하다.

 

2. 프로필 사진(이하 프사) - 딸 사진

현재 우리나라에서 카톡 프사만큼 함축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있을까. 나 또한 프사를 올리거나 때 심혈을 기울여서 사진을 고른다. 내가 자주 보고 싶은 사진 위주로 고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본다는 걸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10년 전 헤어진 전 여자 친구, 내가 회사에서 제일 싫어하는 그놈 등 내 번호를 저장한 누구든지 볼 수 있다는 걸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지한 채 프사를 고른다.

 

뜬금없이 내 프사를 보고 연락 오는 사람들이 은근히 있다. 그중에 가장 많은 연락을 받는 건 아무래도 우리 딸 사진이다. 딸이 이쁘다는 반응이 제일 많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이 사람도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 친구 목록 훑고 있구나. 크크.' 생각하면서 답장을 한다.

 

"인류 과학 기술의 승리다."

 

1,000장을 찍어 가장 이쁘게 나온 사진을 올리는데 사람들은 그걸 우리 딸의 실제 미모로 믿는다. 한편으로는 우리 딸이 못생긴 건 아니라는 생각에, 다른 한 편으론 내가 프사를 잘 골랐다는 생각에 기분은 썩 좋다.

 

3. 프사 – 오래된 프사들

원래 프사를 자주 바꾸지 않는 스타일인데 딸이 생기고 나서는 틈만 나면 바꿨다. 새로운 사진을 올리면 기존 사진을 지우지만, 그중에서 살아남은 두 개의 사진이 있다.

 

내 인생에 가장 사랑한 캐릭터가 있다면 짱구다. 배우 심형탁 님의 도라에몽에 대한 애정 정도는 아니지만 짱구를 향한 내 애정도 작지 않다. 지금도 가끔 짱구 애니메이션을 보곤 하며, 짱구 아빠의 일대를 그린 영상은 잊을 법하면 한 번씩 찾아서 본다. 이를테면 짱구는 나에게는 동심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짱구 같은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아했다. 사고뭉치지만 착하고 무슨 짓을 해도 항상 결과가 좋은. 무려 세상을 구하고 다니는 짱구.

 

내 오래된 프사 사진 중 하나가 바로 그 짱구다. 프사는 짱구의 사진이 조합되어 있고 아래와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나도 모든 게 놀라웠고 장난감 하나로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고 때론 사소한 거에 슬퍼했었고 장난기가 넘치고 어른 한번 시늉해보면서 깔깔댔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이 중에서 딱 하나가 가능하다면 '장난기 넘치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짱구 외에 오래 살아남은 사진은 조은 시인의 ‘언젠가는’이라는 시의 일부이다.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은 버스를 기다리며 /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 외면한 채 한 곳을 바라보며 /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 목이 멜 것이다.’

 

4. 카톡 프로필 문구 - 너무 바쁜 사람은 돈 벌 시간이 없다

 

이 글의 제목이자 내 카톡 프로필 문구다.

 

너무 바쁜 사람은 돈 벌 시간이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문구를 보고 난데없이 연락이 오거나, 어쩌다가 연락이 닿을 때면 너무 감명받았다면서 자신들의 인생을 되돌아봤다는 말을 한다.

 

프사와 같이 이 문구 또한 내가 자주 보기 위해 적어둔 문구였지만 사람들 반응이 그렇다 보니 마음속으로 우쭐거리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을 수가 않다. 정작 돈 벌 시간은 따로 낼 노력은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특히 회사 몇몇 사람들에게 ‘나는 회사보다는 돈에 관심이 많아요. 일은 적당히 하고 내 살 길은 따로 찾겠습니다. 당신들도 너무 그렇게 회사가 전부인 것처럼 살지 마세요. 당신들 회사도 아니잖아요.’라는 메시지를 무심한 듯 세련되게 표현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 좋다. 물론 봤으면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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