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불만순이 아니다

by 고베리슬로우

회사 인간관계는 아무리 친해도 선이 있다. 명확한 이해관계를 전제로 만난 사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 이해관계가 끊어지면 회사에서 만들어진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함께 사라진다.


그래도 운이 좋으면 그 안에서 회사를 떠나도 여전히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나도 운이 좋아 그런 사람이 아예 없진 않다.


그중의 한 명인 A는 유독 회사에 대해 불만이 많다. A는 언젠지 기억도 잘 안 날 때부터 퇴사 노래를 불러왔다. 우리의 대화는 대체로 회사에 대한 불만과 비아냥, 그리고 퇴사 다짐이 많다. 내가 남 걱정해 줄 처지는 아니지만 A가 너무 스스로를 괴롭히는 거 같아 한 번 날 잡고 진지하게 대화를 걸었다.


"자. A야. 내 이야기를 한 번 잘 들어봐. 회사에 모든 회식에 찾아다니면서 참석하는 사람이 있어. 근데 이 사람은 자기 말로는 회식 너무 싫고 힘들어 죽겠고 회식이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데. 그 말을 듣는 사람마다 그렇게 싫으면 가지 마세요. 굳이 그렇게까지 다 따라다닐 필요가 있어요? 말해. 그럼 그 사람은 그럴 수 없데. 그게 사회생활이래. 이 회식은 이 사람 때문에 가야 되고, 저 회식은 저 사람 때문에 가야 된대. 그럼 이 사람은 회식을 싫어하는 거야, 안 싫어하는 거야?"


"정말 싫은 건 아니지 않나. 그렇게 싫었으면 안 가겠지."


"그렇지. 내 생각도 같아. 자기 말대로 가기 싫은 회식도 있겠지. 다음 날 숙취로 힘든 날도 있을 거고. 근데 아마 그렇게 싫지는 않을 거야. 그럼 매일 퇴사 퇴사 노래 부르는 사람이 있어. 회사가 너무 싫데. 퇴사하겠다는 말을 한지 거의 10년이 다 돼가. 근데 퇴사를 안 해. 이 사람은 회사를 싫어해 안 싫어해?"


"야. 그게 같냐."


"같다면 같고 다르다면 다르지. 퇴사한 사람은 같다고 생각할 거고 퇴사를 안 한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하겠지."


"퇴사는 생계가 걸려있잖아."


"누군가에게는 회식에 참여해야 하는 게 본인의 생계의 문제일 수도 있어. 회식을 가야지만 더 오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거지."


"그래도 달라."


"이왕 지금까지 온 거 잘해봐. 그렇게 회사 싫다고 했으면서 너 커리어 봐봐. 최상의 커리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너 커리어 정도면 상위 20% 안에는 드는 거 아냐? 회사를 좀 더 좋아했어 봐. 막 최연소 임원 되고 난리 났을 수도 있어."


"너야말로 열심히 해봐. 너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잖아."


"난 못 해."


"뭘 못 해. 안 하는 거지."


"나이가 어렸을 때는 '안 하고'와 '못하고'가 달랐어. 근데 나이 드니까 안 하는 게 못하는 거고 못하는 게 안 하는 거야. 안 하든 못하든 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한 거야. 난 건강이 너무 망가져서 못해. 목 디스크 허리디스크 때문에 한 시간 넘게 앉아있기도 힘들어. 회사에서는 오래 앉아 있는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오래 앉아 있지 못하면 절대 성공 못해."


"아니야. 너도 할 수 있어. 마음만 먹으면."


"당연히 누가 내 목에 칼을 대고 너 회사에서 성공해. 못 하면 찌른다. 그럼 죽기 살기로 하겠지. 되든 안 되든. 근데 그게 아니잖아. 너도 만약 누가 네 목에 칼 갖다 대고 너 퇴사 안 하면 찌른다. 그럼 당장 퇴사할 거잖아. 죽음이 코 앞인데 목 디스크고 생계고 뭔 소용이야. 일단 살고 봐야지. 근데 회사 생활도 인생도 그런 게 아니잖아. 아무도 그렇게 협박해주지 않잖아. 그러니까 할지 말지는 본인이 결정하는 거고."


"그래. 그렇긴 하지."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너무 오래 스스로를 괴롭혔어. 내가 상처가 많다는 걸 네가 잘 알듯이 네가 상처가 많다는 거 나도 잘 알아. 쉽진 않겠지만 회사에 계속 있을 거면 마음을 좀 붙여봐. 아니면 빨리 관둬.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하면 말로만 준비하지 말고 행동으로도 조금씩 준비를 해봐. 회사 안에서 조금씩 놓는 연습을 해봐. 넌 너무 많은 걸 쥐고 있어. 네가 일하는 거 봐봐. 누가 널 보고 퇴사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널 모르는 사람이 네가 회사에서 하는 거 보면 그냥 넌 야망 덩어리야. 야망의 완전체라고."


"..."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신세계라는 영화 봤어?"


"응. 한 번 봤어. 너무 잔인해."


"엇. 한 번만 본 사람 여기 있었네."


"크크크"


"난 그거 수십 번을 봤거든. 거기서 정청이가 죽기 전에 자성이한테 뭐라 그러는지 기억나?"


"아니 몰라."


"정청이가 ‘이제 선택해. 안 그럼 네가 죽어.’ 그 대사가 난 나한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난 선택했어. 너도 선택해. 죽진 않겠지만 너무 힘들잖아."


"회식이랑 비교하는 거보다는 신세계가 훨씬 낫네."


"난 나중에 늙어서 후회할 거 같은 건 진작에 안 하려고 해. 후회라는 건 과거를 부정하게 만들잖아. 그게 제일 무서워. 나중에 돌아보면서 너무 불필요하게 스스로를 괴롭혔다는 생각이 안 들었으면 좋겠어."


그날도 이야기했지만, 난 네가 굳이 마음을 안 먹어도 지금처럼만 하면 임원이 될 거 같아. 아니 사실 난 네가 이미 이 회사에서 성공하기로 누구보다 굳은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해. 물론 네가 여기서 성공할 거야!라고 마음먹진 않았겠지. 하지만 너는 최소한 이 만큼은 해야지 하는데 너의 최소한이 보통 사람들의 최대한 보다 높아. 욕심이 다른 게 아니라 그게 욕심이야. 형태가 다를 뿐이지. 너도 알 거라고 생각해. 넌 똑똑하니까. 다만 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회사에 욕심을 갖는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기 싫을 뿐이지.


난 이 절이 싫어서 떠나기로 했지만. 넌 이 절의 주인이 되거라. 아 미안 너 기독교지. 종교적인 의미는 없었어. 데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