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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Jan 26. 2021

우리 딸

우리 딸은 날 닮아 눈이 찢어졌다.

웃을 때면 초승달을 눕혀놓은 듯 눈웃음을 치는 것도 날 닮았다.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한 번도 인류의 발이 닿지 않은 태평양 어느 섬 숲 속 깊은 곳에 있을 것 같은 

호수의 투명한 물이 상상된다.

 

우리 딸은 엄마를 닮아 얼굴이 넙데데하고 코가 낮다.

잘 때는 그 쪼그마한 코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이마는 조그마한 타조알을 넣어둔 것처럼 뽈록하다.

 

우리 딸은 사람과 눈을 마주치기만 하면 웃는다.

너무 잘 웃어서 할머니가 생글이라는 별명을 만들어줬다.

가끔은 너무 웃어서 '조금 모자란 건 아니겠지?'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정말 모자란 게 아니라면 쭉 그렇게 웃고 살면 좋겠다.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웃을 일이 되게 하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 딸은 먹성이 남다르다.

신생아 때부터 의사 선생님한테 식단 조절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

쪼꼬만 게 벌써 '젖병=맘마'라는 걸 알아채서 젖병만 보면 싱글벙글 웃는다.

포트에 물 끓는 소리만 들려도 두리번거리며 입이 귀에 걸린다.

맘마를 다 먹고 나면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푹 쉬는데 그 모습이 또 그렇게 사랑스럽다.

 

많이 먹어서 그런지 방귀를 엄청나게 뀐다.

살짝 변비가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투 머취다.

많이 싸는 건 좋은 거다.

우리 딸의 방귀 냄새가 내 방귀 냄새와 기가 막히게 비슷한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우리 딸은 아토피가 있다.

하얗고 뽀얀 볼에는 항상 붉은 열꽃이 올라와 있다.

다행이라면 많이 아파하거나 가려워하지는 않아 보인다는 거다.

딸, 아토피는 반드시 낫게 해 줄게.

 

우리 딸은 잠투정이 심하다.

잠이 오면 얼굴을 비벼대며 괴성을 지른다. 오열을 할 때도 적지 않다.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어 이마와 머리에 상처가 자주 생긴다. 

손톱 케어를 수시로 해줘야 한다.

안아서 재우지 않으면 절대 잠들지 않고, 잠든 딸을 침대에 눕힐 때면 

내 손이 바닥과 하나가 된다는 느낌으로 살며시 눕혀야 한다.

깊은 잠에 빠져도 두 시간에 한 번꼴로 깬다.

그럴 때는 잠드는 경우도 있지만 안아서 노래를 불러줘야만 다시 잠들 때가 많다.

우리 딸이 통잠을 자는 날이 오면 아내와 거하게 축배를 들 것이다.

 

요새는 자기만의 버릇이나 취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언가 마음이 안들 때면 아랫입술을 삐죽 내민다.

맘마를 먹을 때는 한쪽 팔을 계속 위아래로 들었다 났다 하면서 자기 배를 통통 친다.

이유식은 소고기가 들어간 걸 유독 잘 먹는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난감도 생겼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아이 본연의 모습이 마냥 신기하고 사랑스럽다.

 

우리 딸은 아직 만 7개월뿐이 안됐지만 머리숱이 적은  편이다.

장모님은 딸이 만 1살이 넘으면 필히 분유에 검은콩 가루를  넣어서 먹이라고 하신다.

내가 탈모가 있어서 그런지 장모님은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다.

머리가 빨리 자랐으면 하는 마음도 살짝 있지만 딸을 안았을 때 턱밑으로 느껴지는

솜털 같은 머리털들이 많이 그리울 날이 올 것 같다.

 

이 외에도 내 딸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나 순간이 너무나도 많다.

맘마를 원샷하고 얼굴에 기름기 좔좔 흐르는 부호처럼 짓는 미소가 먼저 떠오른다.

자기가 좋아하는 소고기 이유식을 먹을 때면 코를 이유식 병에 박을 정도로 입을 갖다 댄다.

그게 안되면 자기 입으로 숟가락을 끌어당기려고 한다.

미친 듯이 울다가 맘마병을 입에 물려주면 눈 끝에 눈물 한 방울 달아놓고 꼴깍꼴깍 거리면서 맘마를 먹는다.

어떨 때는 너무 급하게 먹어서 맘마가 정수기 물 빠지는 느낌이 들면서 줄어드는데, 그럴 때는 꼭 사레가 들린다.

한 번은 맘마를 다 먹고 내 코앞에서 트림을 했는데 그 냄새가 복잡 오묘했다.

가만히 허공을 보고 있다 느닷없이 '으헤헤' 하고 웃는 소리가 마치 염소 우는소리 같다.

가끔은 '혹시 거기에 뭐가 있니?' 섬뜩할 때가 있다.

신나면 양쪽 눈썹 끝을 올리고, 턱을 아래로 당기면서 두 팔과 두 다리를 동시에 굽혔다 폈다를 반복한다.

거기서 더  신나면 돌고래 소리 같은 고음의 웃음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들으려고 난 오늘도 열심히 재롱을 피운다.

나한테 안겨 있으면 가끔 내 팔뚝을 빨 때가 있는데 그 습하고 미끈거리는 감촉도 역시 복잡 오묘하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는데 뿌지직뿌지직 나오는 똥을 두 손으로 받아낼 때는 환희의(?) 웃음도 나고 냄새도 나고 그랬다.

 

이 모든 순간들은 눈을 감을 때 더 선명해진다.

 

나중에 우리 딸에게 무언가 바라는 게 생길 때,

딸에게 혹시나 욕심이 생길 때,

딸을 이해하기 힘든 날이 올 때,

딸이 나를 상처 주는 날이 올 때에도,

내가 얼마나 우리 딸을 그 존재만으로 사랑했는지,

딸의 생글생글 웃음 하나에 행복해하고 작은 생채기 하나에 마음 졸여했는지,

우리 딸이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라고 바랐는지,

 

그 마음을 간직하고자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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