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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Feb 06. 2021

목적이 없는 십오 분

모퉁이만 돌면 버스 정류장인데 121번 버스가 지나간다. 엇 저거 타야 하는데. 다음 거 타지 뭐. 터덜터덜 걸어 정류장에 도착하니 다음 121번 도착은 15분 뒤다. 이런. 무슨 15분이나 걸리냐며 우리나라 버스 간격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려다 전철 타고 가면 얼마나 걸리지 머리 굴리다가 다 귀찮은데 택시 타고 갈까 택시비를 계산해본다. 이렇게 된 거 그냥 기다리지 마음먹으니 나에게 아무 목적에도 쫓길 필요가 없는 십오 분이 주어졌다.

목적이 없는 십오 분. 문득 심보선 시인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라는 시가 떠올라 나중에 '목적이 없는 십오 분‘이라는 제목으로 글 써야지 어떤 식으로 쓸까 생각하다가 그 또한 목적이 되는 것 같아 머리를 비운다. 지금에 집중하자 마음을 다 잡는다. 

 

가만히 하늘을 본다. 

도로를 달리는 차와 길을 걷는 사람들을 눈으로 따라간다. 

와, 좋은 차다. 얼마 할까? 

저 사람은 진짜 따뜻하게 입었네. 아니, 조금 덥겠는데?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네. 

근데 이거 진짜 깨끗한 거 맞아? 다 미세먼지 아냐? 엇, 그러고 보니 왠지 눈이 따가운 듯?

내 앞에 정차하는 버스 안의 사람들과 눈을 마주친다.

누가 먼저 얼굴을 돌리나 눈싸움을 한다. 내가 먼저 돌리면 괜히 자존심이 상한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꺼내 입은 파카 덕분에 얼굴은 찬데 몸은 따뜻하다. 구름이 없어서 그런지 오존이 뚫려서 그런지 오늘따라 햇살이 유난히 직사광선이다.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다. 얼굴 위에서 차가운 공기와 따스한 햇볕이 뒤섞인다. 따뜻한 물로 하는 샤워가 떠오른다.

 

아무 목적도 계획도 필요 없음에 마음이 홀가분하다. 자유라는 게 구체적인 형상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참을 멀뚱 거린 거 같은데 정류장 전광판을 보니 버스 올 시간이 아직 7분이나 남았다. 8분이 이렇게나 긴 시간이었다니... 다음 정류장까지 슬슬 걸어가 보기로 한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도 오랜만이다. 예전에는 종종 걷기 위해 걸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딜 가는 길에, 강아지 산책시키는 김에, 그러니까 걸어야만 할 때 걷지 ‘그냥’ 걷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목적’, ‘다음’, ‘언제까지’ 들이 붙어 다닌다. 대부분 내가 만들어낸 것들인데, 그것들에 내가 쫓긴다.

 

행여나 다음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도중에 버스가 지나칠까 봐 뒤를 나도 모르게 연신 버스가 오는지 뒤를 돌아보며 걷는다. 아차. 내려놓자. 놓치면 그다음 꺼 타면 되잖아. 속으로 되뇌어보지만 모가지는 속절없이 돌아간다.

 

생각이랑 싸우지 말랬거늘. 

생각이 바로 나고, 내가 바로 생각이다.

생각을 뿌리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요즘 하는 명상을 떠올리며 그 순간 내 안에 생기는 모든 감정을 받아들이며 걷기로 한다. 강아지를 산책하는 학생과 뭐가 그리 신났는지 숨넘어갈 듯이 웃는 어머니들 무리가 내 옆을 지나간다.

 

금요일 오전 11시. 

눈앞에서 놓친 121번 버스. 

예상치 못했던 길 위에서의 15분. 

쌀쌀한 공기. 따스한 햇볕. 발걸음. 강아지. 웃음소리. 

고흐라면 이 장면을 어떻게 그렸을지 상상해본다.

 

정류장에 도착해서 전광판을 본다.

'121번  3분’.

 

"뭐야? 3분이나 더 기다려야 돼?"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튀어나온다. 3분은 카레나 컵라면이 완성되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12분 동안 정화됐던 내 영혼이 시간의 노예로 돌아오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뭐 어쩌나. 목적의 노예든 시간의 노예든 어쩌겠나. 

그 모든 게 나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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