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한국 나이로 12살, 만으로 10살인 고양이가 산다. 2010년 10월 26일 우린 처음 만났고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처음 딸이 생겼을 때, “딸이 더 좋아? 고양이가 더 좋아?”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똑같이 사랑해. 누굴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어. 다를 뿐이야.”
사람들은 믿지도 않고 이해도 못 하지만 실제로 그러하다. 사랑이란 종류가 다양한 감정이다.
꼬미를 처음 데려온 날을 잊지 못한다. 내 손바닥만 했던 우리 꼬미.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던 우리 꼬미. 얼마나 호기심과 장난기가 많던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행여나 어느 틈 사이에 끼거나 떨어지는 물건에 맞아 다치지 않을까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입사 첫해. 연말이 다가오면서 회사일이 많이 바빠졌다. 연일 야근과 회식으로 일주일 내내 열두 시가 다 돼서 들어가서 아침에 일찍 출근했다.
수요일이면 비어있어야 할 꼬미 밥통이 그대로 있었다.
'밥을 안 먹었네?'
매일 맛동산(고양이의 건강한 똥을 일컫는다)을 싸던 아이가 금요일까지 똥을 싸지 않았다.
'음? 똥도 안 싸네?'
이상 징후가 있었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따로 챙길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토요일 아침, 비로소 꼬미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확신했다. 꼬미는 아침부터 움직이지 않고 축 처져 있기만 했다. 꼬미 밥통엔 여전히 밥이 가득했고 꼬미 화장실엔 설사가 있었다. 꼬미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세 시간 동안 병원에 있다가 잠시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날 엄마 집에 가기로 했는데 연락도 못 드리고 있었다.
“아들 언제 올 거야?”
“엄마 나 오늘 못 갈 거 같아. 꼬미가 이상해서 병원에 왔어.”
“왜 무슨 일이야?”
“모르겠어. 검사 중인데 아직 이유를 못 찾았어. 피검사 결과 다음 주에 나오는데, 고양이 백혈병이면 죽을 수도 있나 봐.”
내 입에서 '죽는다'라는 말이 내 귀에 들어가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괜찮아. 아들. 꼬미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라는 엄마의 말에 울컥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울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을 자신이 없었다. 굳이 엄마한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급하게 전화를 끊고 택시 안에서 엉엉 눈물을 흘렸다.
그날 검사는 밤 열 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장장 열 시간의 검사 끝에도 아무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그다음 주 피검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날 하루 종일 꼬미와 있었다. 주 중에도 퇴근하면 바로 집에 가서 꼬미 옆에 있었다. 바로 이틀 전까지만 해도 회사일이 전부인 것처럼 살았는데 꼬미가 아프니 회사일도 아무 의미 없었고 선배들보다 먼저 퇴근할 때 보이던 눈치도 전혀 보지 않게 됐다.
병원으로부터 피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연락이 왔다. 꼬미는 빠른 속도로 밥도 잘 먹고 똥도 잘 싸는 예전의 모습을 회복했다. 꼬미 특유의 장난기가 회복됐을 때 나는 비로소 꼬미가 죽지 않겠구나 한시름 놓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때 꼬미는 우울증이었던 게 아닐까 싶다. 처음으로 일주일 내내 혼자 있었던 꼬미는 그 외로움이 낯설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식음을 전폐하게 된 게 아니었을까.
그날 이후 한동안 꼬미가 언젠가는 나를 떠날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엄습해오곤 했다. 그 생각만으로 심장이 바늘로 찔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할 수 있는 게 달리 없었다. 그저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는 수밖에.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걱정에 적응이 됐고 꼬미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첫째 딸이 돌이 되기 전에는 하루에 단 1초도 함께 하지 않는 날도 적지 않았다. 아내가 결혼할 때 데려온 강아지가 꼬미를 쫓아다니는 탓에 자기 방에서 못 나오는 이유도 크다.
사실 핑계고, 핑계고, 핑계다.
"자기야, 꼬미 병원 언제 데려갈 거야? 요즘 꼬미가 좀 이상해. 살이 계속 빠지는 거 같아."
아내 말을 듣고 나서 오랜만에 밤에 꼬미와 단둘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얼굴도 몸도 많이 야위어 보였다. 짙었던 털도 많이 옅어진 느낌이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꼬미에게 눈을 맞추며 “우리 꼬미 어디 아파?” 물어보니 꼬미는 말없이 내 품에 안겨 그르릉 소리를 내며 내 몸에 구멍을 낼 듯이 꾹꾹이를 해댄다.
미안하고 안쓰러운 감정이 올라온다.
왜 나는 그 많은 시간 동안 꼬미를 혼자 있게 했는가.
예전에는 꼬미에게 “꼬미야 도대체 무슨 생각 하니?”라는 질문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이제 그 질문의 주인공은 우리 딸이 됐다. 나는 더 이상 꼬미의 생각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꼬미의 일거수일투족에 웃음 짓지도 않는다.
며칠 전에는 친한 형이 문득 꼬미가 몇 살이냐며 고양이는 수명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고양이 나이 열두 살. '평균적이라면' 앞으로 3년 이내에 우리 꼬미는 수명을 다 할 확률이 높다. 태연한 척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생각만으로 눈물이 났다.
꼬미를 더 사랑하고 꼬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하늘이 아내와 친한 형을 통해 나에게 주는 신호이자 기회라고 생각한다.
오늘부터 다시 우리 꼬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다. 좀 더 많이 안아주고 좀 더 많이 보듬어주고 좀 더 많이 눈을 마주쳐야겠다. 수면의 질은 현저히 떨어지겠지만 꼬미가 밤새 꾹꾹이 할 수 있도록 이 한 몸 바쳐야겠다.
오로지 내가 부를 때만 고개를 돌리고, 나만 따르는 우리 꼬미,
우리 꼬미 외롭지 않게 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