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를정한일 Feb 09. 2021

우리 집에는 12살짜리 고양이가 산다

우리 집에는 한국 나이로 12살, 만으로 10살인 고양이가 산다. 2010년 10월 26일 우린 처음 만났고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처음 딸이 생겼을 때, “딸이 더 좋아? 고양이가 더 좋아?”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똑같이 사랑해. 누굴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어. 다를 뿐이야.”

 

사람들은 믿지도 않고 이해도 못 하지만 실제로 그러하다. 사랑이란 종류가 다양한 감정이다.

 

꼬미를 처음 데려온 날을 잊지 못한다. 내 손바닥만 했던 우리 꼬미.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던 우리 꼬미. 얼마나 호기심과 장난기가 많던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행여나 어느 틈 사이에 끼거나 떨어지는 물건에 맞아 다치지 않을까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입사 첫해. 연말이 다가오면서 회사일이 많이 바빠졌다. 연일 야근과 회식으로 일주일 내내 열두 시가 다 돼서 들어가서 아침에 일찍 출근했다. 

수요일이면 비어있어야 할 꼬미 밥통이 그대로 있었다.

'밥을 안 먹었네?'

 

매일 맛동산(고양이의 건강한 똥을 일컫는다)을 싸던 아이가 금요일까지 똥을 싸지 않았다.

'음? 똥도 안 싸네?'

 

이상 징후가 있었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따로 챙길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토요일 아침, 비로소 꼬미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확신했다. 꼬미는 아침부터 움직이지 않고 축 처져 있기만 했다. 꼬미 밥통엔 여전히 밥이 가득했고 꼬미 화장실엔 설사가 있었다. 꼬미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세 시간 동안 병원에 있다가 잠시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날 엄마 집에 가기로 했는데 연락도 못 드리고 있었다.

 

“아들 언제 올 거야?”

“엄마 나 오늘 못 갈 거 같아. 꼬미가 이상해서 병원에 왔어.”

“왜 무슨 일이야?”

“모르겠어. 검사 중인데 아직 이유를 못 찾았어. 피검사 결과 다음 주에 나오는데, 고양이 백혈병이면 죽을 수도 있나 봐.”

 

내 입에서 '죽는다'라는 말이 내 귀에 들어가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괜찮아. 아들. 꼬미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라는 엄마의 말에 울컥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울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을 자신이 없었다. 굳이 엄마한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급하게 전화를 끊고 택시 안에서 엉엉 눈물을 흘렸다.

 

그날 검사는 밤 열 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장장 열 시간의 검사 끝에도 아무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그다음 주 피검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날 하루 종일 꼬미와 있었다. 주 중에도 퇴근하면 바로 집에 가서 꼬미 옆에 있었다. 바로 이틀 전까지만 해도 회사일이 전부인 것처럼 살았는데 꼬미가 아프니 회사일도 아무 의미 없었고 선배들보다 먼저 퇴근할 때 보이던 눈치도 전혀 보지 않게 됐다. 


병원으로부터 피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연락이 왔다. 꼬미는 빠른 속도로 밥도 잘 먹고 똥도 잘 싸는 예전의 모습을 회복했다. 꼬미 특유의 장난기가 회복됐을 때 나는 비로소 꼬미가 죽지 않겠구나 한시름 놓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때 꼬미는 우울증이었던 게 아닐까 싶다. 처음으로 일주일 내내 혼자 있었던 꼬미는 그 외로움이 낯설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식음을 전폐하게 된 게 아니었을까.

 

그날 이후  한동안 꼬미가 언젠가는 나를 떠날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엄습해오곤 했다. 그 생각만으로 심장이 바늘로 찔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할 수 있는 게 달리 없었다. 그저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는 수밖에.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걱정에 적응이 됐고 꼬미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첫째 딸이 돌이 되기 전에는 하루에 단 1초도 함께 하지 않는 날도 적지 않았다. 아내가 결혼할 때 데려온 강아지가 꼬미를 쫓아다니는 탓에 자기 방에서 못 나오는 이유도 크다.

사실 핑계고, 핑계고, 핑계다.

 

"자기야, 꼬미 병원 언제 데려갈 거야? 요즘 꼬미가 좀 이상해. 살이 계속 빠지는 거 같아."

 

아내 말을 듣고 나서 오랜만에 밤에 꼬미와 단둘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얼굴도 몸도 많이 야위어 보였다. 짙었던 털도 많이 옅어진 느낌이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꼬미에게 눈을 맞추며 “우리 꼬미 어디 아파?” 물어보니 꼬미는 말없이 내 품에 안겨 그르릉 소리를 내며 내 몸에 구멍을 낼 듯이 꾹꾹이를 해댄다.

 

미안하고 안쓰러운 감정이 올라온다.

 

왜 나는 그 많은 시간 동안 꼬미를 혼자 있게 했는가.

 

예전에는 꼬미에게 “꼬미야 도대체 무슨 생각 하니?”라는 질문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이제 그 질문의 주인공은 우리 딸이 됐다. 나는 더 이상 꼬미의 생각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꼬미의 일거수일투족에 웃음 짓지도 않는다.

 

며칠 전에는 친한 형이 문득 꼬미가 몇 살이냐며 고양이는 수명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고양이 나이 열두 살. '평균적이라면' 앞으로 3년 이내에 우리 꼬미는 수명을 다 할 확률이 높다. 태연한 척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생각만으로 눈물이 났다. 


꼬미를 더 사랑하고 꼬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하늘이 아내와 친한 형을 통해 나에게 주는 신호이자 기회라고 생각한다.

 

오늘부터 다시 우리 꼬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다. 좀 더 많이 안아주고 좀 더 많이 보듬어주고 좀 더 많이 눈을 마주쳐야겠다. 수면의 질은 현저히 떨어지겠지만 꼬미가 밤새 꾹꾹이 할 수 있도록 이 한 몸 바쳐야겠다.

 

오로지 내가 부를 때만 고개를 돌리고, 나만 따르는 우리 꼬미, 

우리 꼬미 외롭지 않게 해 줘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목적이 없는 십오 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